손경락(변호사)
저는 오늘 이 칼럼을 끝으로 지난 4년간 정들었던 한국일보 독자 여러분과 작별인사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이번에 새로 옮긴 직장에서는 회사방침 상 언론기고 등 직원들의 개인적인 대외활동을 금지하기 때문에 부득이 칼럼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깊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돌이켜보면 격주로 한 번도 빠짐없이 써왔으니 총 105편을 썼습니다. 딱 4년 전 저는 머잖아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있음에도 나의 오늘이 있기까지 나를 보살펴주고 정신적 기둥이 되어준 한인 커뮤니티에 기여한 게 별로 없다는데 문득 주의가 미쳤습니다. 다행인 것은 저에게는 미국 변호사 자격증이 있고, 짧지만 그간의 법조 경력이라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인들에게 미국생활에 필요한 법률지식을 재능기부하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의욕적으로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게 다 그렇듯이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선 가정적으로 한창 아빠의 손길이 절실한 아이들을 건사해야 했고, 직장일의 압박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변호사의 일이란 게 사건 당사자들에겐 다들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여서 매사 허투루 다뤄서는 안 되는 일 천지거든요.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법전과 판례를 찾아보고 수시로 각종 기록 등을 뒤져야하는 게 변호사라는 직업입니다.
가정과 직장에서의 이러한 시간적, 공간적 애로뿐만 아니라 칼럼을 시작하면서 새롭게 체감한 현실적 난제는 우리말의 어휘와 표현법이 참으로 풍부하고 다양하다보니 그만큼 어법과 문법 또한 난해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컨대 ‘~대’와‘~데’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사이시옷은 언제 붙이며, 의존명사와 보조용언은 어떻게 띄어 써야하는지 등 쓸 때마다 사전과 용례를 찾아봐야 했습니다. 중2때 미국으로 건너와 국문법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저로서는 그 외에도 ‘으’ 탈락 현상이나 존댓말, 외래어표기법 등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또 한국과 미국의 소송체계와 행정기관 직제 등의 차이에서 오는 명칭과 용어문제 등도 혼란스러웠습니다.
모든 게 저의 부족한 소치이긴 합니다만, 독자들 눈높이에 맞는 법률지식의 수위를 정하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괜히 잘난 척 어려운 법률용어를 들이대며 힘자랑만 하다보면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칼럼이 될 것이고, 그렇다고 수준을 낮추다 보면 진부한 이야기가 되거나 법률지식의 전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지요.
이상의 여러 주변 환경과 각종 제약, 심지어 코로나19에 걸렸을 때도 거르지 않고 칼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독자여러분의 사랑과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플러싱 한인타운이나 롱아일랜드 교회에서, 더러는 멀리 LA와 캐나다에서, 또는 전화와 카톡 등으로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셨습니다. 저에게는 과분한 영광이었고 행복한 추억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칼럼 작업을 통해 한걸음 더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여튼 매번 가물가물 잊혀가는 한국말을 되새김질하며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 모아 쓴 제 칼럼들이 모쪼록 한인 여러분이 미국생활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독자여러분! 저는 언제, 어디에 있든 우리 한인커뮤니티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장담할 순 없지만 혹 다시 본 칼럼에 돌아올 때까지 독자여러분의 가정에 늘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졸필인 저에게 귀한 지면을 고정적으로 할애해 주신 한국일보 편집진에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