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희(LA미주본사 논설실장)
백남준이 살아있다면 지금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을까?
얼마 전 개봉된 백남준 다큐멘터리(“Nam June Paik: Moon is the Oldest TV”)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사후 그 천재성이 더 높게 평가되는 고 백남준(1932~2006)은 이름 앞에 많은 수식어가 붙는 시각예술의 거장이다. 가장 먼저 쓰이는 것이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이고, 그 외에도 아방가르드 뮤지션, 문화테러리스트, 전위 행위예술가, 희대의 괴짜, 예술깡패… 등이 있다.
그런데 요즘 와서는 그의 예술적 혜안에 더 많은 경이와 찬사를 보내는 또 다른 수식어들이 회자된다. ‘디지털시대의 노스트라다무스’ 혹은 ‘정보 무당’이 그것으로, 이미 50년 전에 디지털과 인터넷, 테크놀로지 시대를 예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해진 별칭들이다.
백남준은 1974년 쓴 글에서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란 용어와 함께 인터넷 시대를 예견했다. 위성과 케이블, 광섬유를 사용해 멀리 떨어진 도시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지으면 각각 다른 장소에서도 함께 컨퍼런스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놀라운 선견이었다.
이 글에서 그는 ‘스마트폰’도 그려 보인다. “언젠가 1001가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멀티미디어 전화시스템’이 생길 것이며, 미니TV라 불리게 될 그것으로 비디오 콜, 바이오통신, 쇼핑, 여론조사, 데이터 전송, 심지어 건강진단까지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심지어 ‘유튜브’ 시대를 내다보기도 했다. 백남준은 1965년 일본에서 비디오캠코더가 처음 나왔을 때 즉각 그 혁명적 기능에 열광하여 사들였다. TV가 ‘바보상자’ 즉 일방소통 매체인데 반해 비디오는 수정과 조작이 가능한 쌍방소통의 민주적 매체였기 때문이다. 공학자 아베 슈야와 함께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개발한 그는 이를 사용해 7개 영상과 소리를 현란하게 믹싱한 대표작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를 발표했다. 비록 당시에는 전혀 이해받지 못했지만, 백남준은 이런 영상편집기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고 1인 미디어가 되어 각자의 채널과 청중을 갖게 되리라고 꿈꿨다.
부처가 TV화면 속의 자신을 독대하는 작품 ‘TV 부다’에서 ‘셀피’ 이미지를 찾기도 하고,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과 벌였던 공연들 가운데 TV브라와 TV안경 같은 작품에서 ‘웨어러블 기기’를 보는 사람도 있다. 민주주의가 뭐냐는 질문에 “말대꾸하는 것(talking back)”이라 했던 백남준의 답변이 바로 ‘댓글’과 ‘피드백’의 개념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인터넷은커녕 모든 사람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휴대한다는 발상 자체가 공상과학이던 시절에 그가 툭툭 내던진 예측들은 지금 전부 현실이 되었다. 그를 ‘미래에서 온 선지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백남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communication)이었다. 일방이 아닌 쌍방의 소통, 세계인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소통하는 예술을 치열하게 추구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예술 사이, 예술과 기술 사이, 예술 장르들 사이의 소통이 백남준 아트의 소실점이다. TV 수상기를 뜯고 화면 속으로 들어가는 익살을 부렸던 것도 그 때문 아닐까.
한인 2세 아만다 김 감독이 만든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대단히 잘 만든 영화다. 올해 선댄스 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진출작이었고, 공영방송 PBS가 ‘미국의 거장들’(American Masters) 시리즈에 수록했을 만큼 수준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끝날 즈음에는 잔잔한 전율이 파도처럼 밀려와 온몸을 감싸 안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다큐는 그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충실히 따라간다. 재벌집 아들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일본과 독일 유학시기를 거쳐 뉴욕에서 비디오예술가로 분투하다가 마침내 현대예술계의 거성으로 우뚝 서기까지 그의 74년 인생이 촘촘히 밀도 높게 소개된다. 백남준 개인의 인생사는 그 자체로 세계사여서 한국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의 핍절한 모습은 물론 1950년대 이후 독일과 미국을 무대로 펼쳐진 급진적 문화예술의 역사가 고스란히 펼쳐진다.
백남준이 삶의 궤적에서 만난 사람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기라성 같은 인물들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의 예술세계에 획기적 영향을 미친 존 케이지를 비롯해 요셉 보이스, 머스 커닝햄, 오노 요코, 데이빗 보위, 알렌 긴즈버그가 등장하고, 가족 친지는 물론 수많은 큐레이터, 미술사가, 화랑 및 뮤지엄 관계자들의 인터뷰도 수록됐다. 백남준의 육성도 나오지만 그가 써놓은 글들은 배우 스티븐 연이 내레이션으로 읽는다.
감상을 배제하고 백남준의 흔적만을 충실히 따라간다. 평생 장난기를 잃지 않았던 그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린 채.
뮌헨 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던 시절 쇤베르크의 피아노소나타를 연주하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가난한 예술가가 벌이는 과격하고 혁신적인 작업들을 날 것 그대로 기록한 영상들이 가슴 뛰게 만든다. 미공개 영상들과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가 엄청난데 이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107분짜리 다큐로 엮은 탁월한 편집이 놀라웠다.
지난 30일 예술후원단체 캄(Korean American Muse, 회장 제인 리) 주관으로 LA한국문화원(원장 정상원)에서 열린 다큐 상영회에서 아만다 김 감독은 백남준이 남긴 일기, 기록, 편지, 프로포절 등 수많은 글들이 뼈대가 됐고 자료를 모으느라 5년 넘게 애썼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백남준이 상상했던 세상을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이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스크린을 들여다보며 각자 따로 소통하는 모습을 본다면 백남준은 무어라 할까.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동안 그는 또 미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있을까. 백남준이 했던 말을 생각한다.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