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봄 끝물 무렵에 봄이 떠나는 것이 아쉬워 문안 삼아 했던 품앗이로 친구 전화가 울렸다.
올 여름이 유난스레 더울 것이라는 기상 예보부터 불평이 시작된다. 해마다의 여름이 그리 시원한 적은 없었는데. 늘 바빠 죽겠다는 푸념을 달고 산다. 뭐가 그리 바쁠까. 친구 일상이 갑자기 궁금해진다. 손자 손녀도 대학생으로, 직장인으로 할머니 손길이 아쉬운 편도 아니요, 자제분 비지니스도 도움 손길이 필요한 터도 아니고, 전화 서두에 그 간 별일 없다 했는데. 무언가 해야할 일이 바쁠 정도로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바쁜 일로 하여 더위를 잊을 만큼 보람 있는 일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무료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주함 속으로 떠밀어 넣는 불상사는 아니었으면 싶은데 친구의 분주함이 만족과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유익한 성취의 보람으로 이어지길 바램해본다.
일상에서 ‘바쁘다’ 는 말이 자주 사용되는 단어로 등극하고 있다. 일이 많아 바쁜지, 마음이 바쁜지, 바쁘다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딱히 바쁜 스케줄이 있는 것도 아닌데 특별히 추근대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해서 마냥 한가하거나 마음의 느긋한 여유로움이 자리잡고 있다고 자부할 수도 없는 발생 미상의 바쁜 일상을 보내고들 있다.
초고속으로 발전된 문명의 편리함보다 일에 얽매이면서 불편을 초래하는 일들이 쌓여간다. 편리 추구를 위한 자동차 구입이 유용함이나 경제적 실용성 효과보다 부작용이 일상을 짜증스럽게 만들고, 고속열차, 제트 여객기, 우주 여행도 속도 문명을 부채질하면서 문명은 발 빠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문명의 혜택도 일상을 지치게 만들기도 하는 터라 문명의 혜택도 별로인 것처럼 작용되기도 한다. 최소한 내 유년 시절의 한아한 서정이 감돌았던 일상이 그리워지는 것은 문명의 혜택조차 요란한 아우성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복잡다난한 삶을 수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좀 더 단순화 된 삶이 절실하다. 매사 까다롭지 않아서 너그러운 후덕함을 지닌 마음 씀씀이와 행동이며 태도가 아쉬워진다. 갈수록 서로를 포용하는 느린 삶의 태도가 절실해진다.
영국 저널리스트 칼 어너리 는 “느린 것이 아름답다”는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슬로 라이프를 ‘달콤한 인생’ 이라고 풀이했다. 영국,프랑스, 미국 등을 순회하며 슬로 시티, 슬로 스쿨, 슬로 잡, 슬로 음악 등을 취재하며 르포와 인터뷰, 자신의 체험기를 적절히 배합해 전세계 슬로 운동 현장 보고서를 만들었다. ‘느린 것이 아름답다’가 문명사회에 도전하는 과격한 선전포고가 아닌 현대인의 삶을 느린 방향으로 바꾸어 보자는 참신한 슬로건이라는 점이다. 속도감이 생활화된 현대인들이 느림을 쉽게 수용할 것이란 기대치는 쉽지 않다. 속도는 생산적 면에서 강력한 힘이 있어 산업발전을 가져왔지만 모든 것에는 걸맞는 속도가 있기 마련이다.
빠름 추구를 방치하다 보면 세상 균형도 무너질 위험을 안게 된다. 빠름이 요구되지만 때로는 필요에 의한 느림을 선택할 줄 아는 균일성이 요구된다. 분별 없는 빠름은 지양되어야 한다. 변증법상 빠름을 마냥 추구하며 제어하지 못한다면 모순된 여러 요소와 대립하게 될 양상이 되면 지혜로운 중재가 필요하다. 복잡다양한 소용돌이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야 할까. 천천히 걷고 천천히 생각하다 보면 확연히 삶으로 유연하게 인도 받을 것이다.
Slow City 느리게 살기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다.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슬로푸드 선언문을 채택했고 그후 1999년 10월 이탈리아의 소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느리게 살기 운동인 슬로시티 운동이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면서 농장에서 올리브와 포도를 키우고 가정에서 엄마와 딸은 손수건과 식탁보를 손수 만든다. 아버지와 아들은 양을 키워 치즈를 만들고 마을 숲에서 나온 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생산된 물건들은 일반 소비자 물가보다 비싸지만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인기가 많다.
이 마을에는 공장도 없고, 대형 마트, 패스트푸드 점도 없고 가정이나 음식점에는 냉장고도 없다. 직접 농사한 신선한 채소, 농장에서 손수 기른 가축의 고기로 옛 방식을 고수하며 음식을 만든다. 전통과 자연을 보호하면서 마을 개발을 위해 오래된 건물을 고쳐서 쓰느라 현대식 건물도 없다. 마을 대부분이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집에서 거주한다. 관광객이 많아지자 오래된 성을 고쳐서 호텔로 만들었고 마을에 정착하지 않을 사람에게는 땅도 집도 거래하지 않는다. 느리게 살기 마을이 세계로부터 관심 받고 있는 것은 전통의 소중함과 건강한 삶을 통한 생활 여유를 느끼며 더 많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현대인들의 동경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바쁜 삶의 속도를 잠시 줄이고 천천히 삶을 둘러보면 느림이라는 말이 그냥 빠름의 반대가 아니라는 것이 절실해질 것이다. 느리게 살아보자는 것은 문명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던 그 무렵의 옛날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느리게 사는 삶음 미래를 향하고 있으면서 과거 현재를 잊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전통적인 옛 삶의 부분들과 문명의 최 정점에 이른 현재를 조화롭게 다스려 보자는 것이다. 느린 것이 아름답다. 느림에 대한 갈망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본능적 아우성이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깊은 호흡과 심오한 사려가 필요하다는 합성이다. 가쁜 숨을 천천히 호흡해보고 싶은 열망이다. 노년의 느릿한 걸음새도 ‘느린 것이 아름답다’는 틀 안에서 바라볼 순 없을까. 창망한 푸른 하늘을 향해 노심을 드러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