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욱(서울경제 논설위원)
러시아에서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가 철수한 민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향후 운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외적으로 형사처벌 면제를 약속했지만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프리고진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프리고진이 암살될 위험에 놓이면서 다시 소환된 용어가 ‘푸틴의 홍차’다. 원래 이 말은 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이었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2006년 방사성물질인 폴로늄-210이 든 홍차를 마시고 사망한 데서 유래했다. 푸틴의 최대 정적 중 하나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2020년 공항에서 차를 먹고 모스크바행 국내선 항공기에 탑승했다가 혼수상태에 빠진 뒤 독일로 긴급 이송돼 겨우 살아남았다.
이후에도 독극물 중독, 심장마비, 추락사, 극단적 선택 등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의 석연찮은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CNN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러시아 사업가 13명이 자살이나 원인 불명의 사고로 사망했다. 미국 언론 ‘디 애틀랜틱’에 따르면 관료·언론인 등을 더해 지난해 반체제 성향 인사 24명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졌다.
올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협정을 중재하던 러시아계 로만 아브라모비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전 첼시 구단주와 반 푸틴 성향의 석유 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가 독극물 증상을 보였다. 심지어 암살 대상은 러시아 정부 인사로까지 향한다.
올 5월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비판적이었던 표트르 쿠체렌코 러시아 과학고등교육부 차관이 쿠바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했다.
독재 정권이 공포정치를 통해 노리는 것은 바로 강요된 침묵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집권 이래 중국에서는 최고위 관료나 기업가, 연예인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아무런 법적 조치 없이 소리 소문 없이 밀실에 갇힌다. 이른바 ‘실종 정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복형인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극물로 암살했고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 처형했다.
절대 권력자가 겁박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세상은 ‘죽은 사회’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