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경동나비

[시론] "관광은 무역" 마쓰시타의 한 수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6-26 14:11:38

시론, 신경립 서울경제 논설위원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신경립(서울경제 논설위원)

일본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954년 ‘문예춘추’ 5월호에 실은 ‘관광입국의 변’이라는 기고문에 이 같은 부제를 달았다. 전후 재건 작업이 한창이던 시기에 에너지 생산보다 호텔 짓는 게 우선이라는 역발상을 펼친 이 글에서 마쓰시타는 “물품을 수출하려면 자원을 써야 하지만 자연은 아무리 봐도 줄어들지 않으니 이렇게 득이 되는 사업은 없다”며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달러화를 얻는다는 점에서 볼 때 관광도 넓은 의미에서 훌륭한 무역”이라며 외국인 관광객 100만 명이면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이 한 해 5만 명이 채 안 되던 때다. 제아무리 뛰어난 경영자의 말이라도 허황되게 들렸을 법하다.

공상처럼 들렸던 마쓰시타의 구상은 21세기 들어 현실이 됐다. 2013년 1,000만 명을 돌파한 일본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멈추기 직전인 2019년 3,188만 명까지 치솟으며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이 됐다.

출발점이 된 것은 마쓰시타의 기고로부터 약 50년 뒤인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의 ‘관광입국’ 선언이다. 고이즈미 정부가 관광을 국가 과제로 선정한 뒤로 일본 정부는 장기 불황에 빠진 경제를 일으킬 핵심 성장 동력으로 관광산업 육성에 힘을 실었다. 2007년 관광입국추진기본법을 제정하고 2008년에는 관광청을 설립했다. 2009년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당도 관광 육성 정책 기조를 이어갔다. 

특히 2012년 출범한 아베 신조 정권은 외화 유입 효과가 큰 ‘인바운드’ 관광을 주요 수출산업이자 인구문제를 타개할 해법으로 보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총리가 전면에 나서 관광 활성화를 진두지휘하며 규제를 완화하자 민간 투자가 봇물을 이루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외국인들의 관광 소비 규모가 반도체 등 전자 부품 수출을 넘어서며 2016년 이후 관광은 자동차에 이어 2~3위를 오르내리는 일본의 대표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이 총력을 다해 관광객을 불러 모은 20년 동안 한국은 뒷짐 지고 옆 나라의 발전을 지켜봤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탁월한 문화유산,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한류 콘텐츠까지 고루 갖췄지만 미약한 홍보와 지방의 호텔·교통 인프라 부족, 질 낮은 서비스 등이 시장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 바가지요금 논란도 여전하다. 일본보다 한발 앞서 외국인 방문객 1,000만 명 시대를 열었지만 2015년 역전당한 뒤로 관광객 수의 격차는 날로 벌어졌다. 

2014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관광대국을 만들겠다고 장담했지만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는 관광 육성을 아예 뒷전으로 돌렸으니 당연한 결과다. 엔데믹 전환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돌아왔다고 좋아하기는 이르다. 올 4월 코로나 이전 대비 외국인 관광객 회복률이 한국은 55%인데 일본은 70% 수준으로 월등히 높다. 하필 휴가철을 앞두고 엔화 가치까지 떨어져 비용 측면에서도 일본의 경쟁 우위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불황으로 수출이 얼어붙고 경제가 휘청이자 윤석열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관광산업을 키우겠다고 했다. 1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올해를 ‘관광대국’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K컬처를 앞세워 2027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달성한다는 야심 찬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창대한 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실천 의지가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다. 관광 활성화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도 없이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고만고만한 단기 대책을 나열하는 것으로 무슨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부쩍 온기가 감도는 일본 경제를 보니 관광산업의 잠재력이 너무나 커 보인다. 한류에만 의존하려는 안이한 생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관광을 그저 그런 내수산업으로 놔둘지, 유망한 수출산업으로 키울지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수출 경쟁력을 갈고닦는 노력으로 이제 관광 육성에도 제대로 힘을 들여야 한다. 70년 전 일본의 ‘경영의 신’에게 우리도 한 수 배워야겠다.

[시론] "관광은 무역" 마쓰시타의 한 수
신경립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트럼프의 대량 추방대상

케빈 김 법무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그의 이민법 집행 계획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벌레박사 칼럼] 카펫 비틀 벌레 퇴치법

벌레박사 썬박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카펫이 깔려 있다. 카펫에서 나오는 벌레 중 많은 질문을 하는 벌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카펫 비틀(Carpet Beetle) 이다. 카펫

[행복한 아침] 자연의 가을, 생의 가을

김정자(시인·수필가)                                       단풍 여행을 떠나자는 권면을 받곤 했는데 어느 새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섰다. 애틀랜타 가

[삶과 생각] 청춘 회억(回憶)

가을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인생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인 것 같다. 입시를 앞 둔 몇 달, 마지막 정리를 하며 분초를 아끼며 집중했던

[데스크의 창] ‘멕시칸 없는 하루’ 현실화될까?

#지난 2004년 개봉한 ‘멕시칸 없는 하루(A Day Without a Mexican)’는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한 날 멕시칸이 일시에 사라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상적인 혼란을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와 해리스가 연일 박빙의 구도를 보였으나 결과는 이를 비웃는 듯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어 모

[뉴스칼럼] 유튜브 채널의 아동착취

가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콘텐츠가 적지 않다. 주로 부부가 주인공이다. 유튜브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동업 관계다. 함께 제작하거나 동영상 촬영에 협력하면서 돈을 번다. 유튜브 채널이

[신앙칼럼] 차원 높은 감사(The High Level Of Gratitude, 합Hab. 3:16-1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뉴스칼럼] 슬기로운 연말모임 - 말조심

“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60대의 백인남성은 기가 막혀했다. LA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동부에 다녀왔다. 90대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언뜻 보기에 2024년 한해 동안 나라 안팎에서 치러진 선거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인플레이션에 휘말린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쓸어간 거대한 물결로 설명할 수 있을 듯 싶다. 지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