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립(서울경제 논설위원)
일본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954년 ‘문예춘추’ 5월호에 실은 ‘관광입국의 변’이라는 기고문에 이 같은 부제를 달았다. 전후 재건 작업이 한창이던 시기에 에너지 생산보다 호텔 짓는 게 우선이라는 역발상을 펼친 이 글에서 마쓰시타는 “물품을 수출하려면 자원을 써야 하지만 자연은 아무리 봐도 줄어들지 않으니 이렇게 득이 되는 사업은 없다”며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달러화를 얻는다는 점에서 볼 때 관광도 넓은 의미에서 훌륭한 무역”이라며 외국인 관광객 100만 명이면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일본을 찾는 외국인이 한 해 5만 명이 채 안 되던 때다. 제아무리 뛰어난 경영자의 말이라도 허황되게 들렸을 법하다.
공상처럼 들렸던 마쓰시타의 구상은 21세기 들어 현실이 됐다. 2013년 1,000만 명을 돌파한 일본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멈추기 직전인 2019년 3,188만 명까지 치솟으며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이 됐다.
출발점이 된 것은 마쓰시타의 기고로부터 약 50년 뒤인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의 ‘관광입국’ 선언이다. 고이즈미 정부가 관광을 국가 과제로 선정한 뒤로 일본 정부는 장기 불황에 빠진 경제를 일으킬 핵심 성장 동력으로 관광산업 육성에 힘을 실었다. 2007년 관광입국추진기본법을 제정하고 2008년에는 관광청을 설립했다. 2009년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당도 관광 육성 정책 기조를 이어갔다.
특히 2012년 출범한 아베 신조 정권은 외화 유입 효과가 큰 ‘인바운드’ 관광을 주요 수출산업이자 인구문제를 타개할 해법으로 보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총리가 전면에 나서 관광 활성화를 진두지휘하며 규제를 완화하자 민간 투자가 봇물을 이루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외국인들의 관광 소비 규모가 반도체 등 전자 부품 수출을 넘어서며 2016년 이후 관광은 자동차에 이어 2~3위를 오르내리는 일본의 대표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본이 총력을 다해 관광객을 불러 모은 20년 동안 한국은 뒷짐 지고 옆 나라의 발전을 지켜봤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탁월한 문화유산,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한류 콘텐츠까지 고루 갖췄지만 미약한 홍보와 지방의 호텔·교통 인프라 부족, 질 낮은 서비스 등이 시장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 바가지요금 논란도 여전하다. 일본보다 한발 앞서 외국인 방문객 1,000만 명 시대를 열었지만 2015년 역전당한 뒤로 관광객 수의 격차는 날로 벌어졌다.
2014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관광대국을 만들겠다고 장담했지만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는 관광 육성을 아예 뒷전으로 돌렸으니 당연한 결과다. 엔데믹 전환 이후 외국인 관광객이 돌아왔다고 좋아하기는 이르다. 올 4월 코로나 이전 대비 외국인 관광객 회복률이 한국은 55%인데 일본은 70% 수준으로 월등히 높다. 하필 휴가철을 앞두고 엔화 가치까지 떨어져 비용 측면에서도 일본의 경쟁 우위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불황으로 수출이 얼어붙고 경제가 휘청이자 윤석열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관광산업을 키우겠다고 했다. 1조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올해를 ‘관광대국’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K컬처를 앞세워 2027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을 달성한다는 야심 찬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창대한 목표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실천 의지가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다. 관광 활성화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도 없이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고만고만한 단기 대책을 나열하는 것으로 무슨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부쩍 온기가 감도는 일본 경제를 보니 관광산업의 잠재력이 너무나 커 보인다. 한류에만 의존하려는 안이한 생각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관광을 그저 그런 내수산업으로 놔둘지, 유망한 수출산업으로 키울지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수출 경쟁력을 갈고닦는 노력으로 이제 관광 육성에도 제대로 힘을 들여야 한다. 70년 전 일본의 ‘경영의 신’에게 우리도 한 수 배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