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경동나비

[단상] 감각 트레이닝(현재를 살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6-26 14:04:20

단상, 전한나 UX 디자이너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전한나(UX 디자이너)

회사 카페테리아가 붐빌 12시보다 조금 이른 시각, 점심 샐러드를 들고 나와 나무그늘 밑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초록, 보라, 빨강, 노랑, 여러 색의 채소들이 담겨있는 샐러드보울에 포크를 찔러넣고 식사를 시작한다. 아삭한 양상추, 딱딱하고 고소한 해바라기씨, 톡하고 새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방울토마토, 달달한 드라이 크랜베리가 맛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깥 온도에 때때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반갑다. 조용히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주변의 나무와 풀들도 흔들고 지나간다. 가만 보면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나무와 풀들이다. 자세히 보다보면 미약하게 풀 냄새가 코끝에서 나는걸 느낄 수 있다.

풀들이 바람에 쓸려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 뒤로 카페테리아로 향하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소리,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분 좋은 날씨에,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신선하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함으로 마음이 충만해진다.

나는 요즘 의도적으로 내 감각들을 트레이닝하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식사시간은 그것을 연습하기에 좋은 시간인데,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식당에서 홀로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음식을 먹고 있다. 스크린에 집중하느라 아마 음식의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나 역시 오랜 시간 그렇게 식사를 했다. 

그 습관을 바꿔준 것은 지난 2월 친구와 함께 1박2일로 놀러 갔던 나파 밸리 여행에서의 경험이다. 여러가지 생각들로 늘 시끄러운 내 머릿속을 누가 깨끗이 청소한 것 마냥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던 이틀이 신기했다. 회사 일에 대한 걱정, 처리해야할 개인적인 일 등등은 온데간데 없었다. 작은 언덕의 포도밭을 걸으며 나는 친구가 귀찮아할 정도로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나의 모든 감각들은 여행의 매 장면에 녹아들어 나로 하여금 ‘순간’을 살게 했다. 이것이 ‘현재를 산다’는 말인 걸까. 몸은 여기에 있으나 온통 정신은 과거 혹은 미래의 어느 지점에 가있다거나, 디지털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닌, 바로 ‘지금, 여기’를 사는 것.

내 모든 감각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내가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선물이다. 이 땅에서 사는 날 중 가장 젊은 날이 오늘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기에 나는 오늘도 내 오감들과 함께 ‘지금, 여기’를 잘 살아내는 연습을 한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트럼프의 대량 추방대상

케빈 김 법무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그의 이민법 집행 계획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벌레박사 칼럼] 카펫 비틀 벌레 퇴치법

벌레박사 썬박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카펫이 깔려 있다. 카펫에서 나오는 벌레 중 많은 질문을 하는 벌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카펫 비틀(Carpet Beetle) 이다. 카펫

[행복한 아침] 자연의 가을, 생의 가을

김정자(시인·수필가)                                       단풍 여행을 떠나자는 권면을 받곤 했는데 어느 새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섰다. 애틀랜타 가

[삶과 생각] 청춘 회억(回憶)

가을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인생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인 것 같다. 입시를 앞 둔 몇 달, 마지막 정리를 하며 분초를 아끼며 집중했던

[데스크의 창] ‘멕시칸 없는 하루’ 현실화될까?

#지난 2004년 개봉한 ‘멕시칸 없는 하루(A Day Without a Mexican)’는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한 날 멕시칸이 일시에 사라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상적인 혼란을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와 해리스가 연일 박빙의 구도를 보였으나 결과는 이를 비웃는 듯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어 모

[뉴스칼럼] 유튜브 채널의 아동착취

가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콘텐츠가 적지 않다. 주로 부부가 주인공이다. 유튜브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동업 관계다. 함께 제작하거나 동영상 촬영에 협력하면서 돈을 번다. 유튜브 채널이

[신앙칼럼] 차원 높은 감사(The High Level Of Gratitude, 합Hab. 3:16-1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뉴스칼럼] 슬기로운 연말모임 - 말조심

“아버지가 언제 그렇게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고 60대의 백인남성은 기가 막혀했다. LA에서 대학교수로 일하는 그는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최근 동부에 다녀왔다. 90대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파리드 자카리아 칼럼] 민주당의 세 가지 실수

언뜻 보기에 2024년 한해 동안 나라 안팎에서 치러진 선거는 팬데믹 이후의 혼란과 인플레이션에 휘말린 정치 지도자들을 한꺼번에 쓸어간 거대한 물결로 설명할 수 있을 듯 싶다. 지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