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나(UX 디자이너)
회사 카페테리아가 붐빌 12시보다 조금 이른 시각, 점심 샐러드를 들고 나와 나무그늘 밑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초록, 보라, 빨강, 노랑, 여러 색의 채소들이 담겨있는 샐러드보울에 포크를 찔러넣고 식사를 시작한다. 아삭한 양상추, 딱딱하고 고소한 해바라기씨, 톡하고 새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 방울토마토, 달달한 드라이 크랜베리가 맛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깥 온도에 때때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반갑다. 조용히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주변의 나무와 풀들도 흔들고 지나간다. 가만 보면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나무와 풀들이다. 자세히 보다보면 미약하게 풀 냄새가 코끝에서 나는걸 느낄 수 있다.
풀들이 바람에 쓸려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 뒤로 카페테리아로 향하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소리,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분 좋은 날씨에,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신선하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함으로 마음이 충만해진다.
나는 요즘 의도적으로 내 감각들을 트레이닝하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식사시간은 그것을 연습하기에 좋은 시간인데,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식당에서 홀로 식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음식을 먹고 있다. 스크린에 집중하느라 아마 음식의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나 역시 오랜 시간 그렇게 식사를 했다.
그 습관을 바꿔준 것은 지난 2월 친구와 함께 1박2일로 놀러 갔던 나파 밸리 여행에서의 경험이다. 여러가지 생각들로 늘 시끄러운 내 머릿속을 누가 깨끗이 청소한 것 마냥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던 이틀이 신기했다. 회사 일에 대한 걱정, 처리해야할 개인적인 일 등등은 온데간데 없었다. 작은 언덕의 포도밭을 걸으며 나는 친구가 귀찮아할 정도로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나의 모든 감각들은 여행의 매 장면에 녹아들어 나로 하여금 ‘순간’을 살게 했다. 이것이 ‘현재를 산다’는 말인 걸까. 몸은 여기에 있으나 온통 정신은 과거 혹은 미래의 어느 지점에 가있다거나, 디지털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닌, 바로 ‘지금, 여기’를 사는 것.
내 모든 감각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사실 내가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선물이다. 이 땅에서 사는 날 중 가장 젊은 날이 오늘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기에 나는 오늘도 내 오감들과 함께 ‘지금, 여기’를 잘 살아내는 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