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부터 눈에 띄는 현상이 있었다. 한국에서 추위가 물러나고 새싹이 움틀 무렵부터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졌다. “친구들이 없다, 모두 서울에 가서 여기 남아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몰려갔다는 것은 그만큼 항공권 구매가 많았다는 것. 수요가 많으면 공급은 달리고 공급이 달리면 가격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최근 아이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하려던 가족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비행기표 값 때문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서울에 갈 계획이던 남가주의 한 부부. 팬데믹에 막혀 한국의 가족들을 본지 여러 해가 된 부부는 올여름에는 꼭 한국에 가서 아이들에게 친척들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몇 해 전 방문 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행사에 전화해 항공권을 예매하려는 순간부터 갈등이 생겼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평소 이용하던 항공권 가격은 3,000 달러를 훌쩍 뛰어넘고, 저가 항공사라는 에어프레미아 가격도 2천수백 달러에 달한다. 가격이 좀 싸다는 외국 항공편들은 직항이 아니라 경유를 하니 LA에서 인천공항 가는데 20여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네 식구 비행기표 값만 최소한 1만 달러. “올 여름에 간다”고 한국의 가족친지들에게 말해두었으니 이제 와서 취소하기도 어렵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고국방문을 강행하기는 하지만, 갔다 와서가 문제다. 크레딧 카드빚이 얼마나 될지…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이다.
팬데믹 기간을 통과하면서 유행처럼 등장한 용어가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다. 보복 소비란 여건이 나빠서 억눌러야 했던 소비욕구를 한꺼번에 분출하며 평소에는 생각도 않던 호화물품이나 서비스들을 마구 사들이는 행위. 행동의 자유를 억압받았던 사람들이 돈을 펑펑 씀으로써 자율권을 회복한 듯한 느낌,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은 듯한 느낌을 갖는 심리이다.
시작은 중국이었다. 2019년 12월부터 환자가 발생, 팬데믹이 제일 먼저 시작된 중국에서는 2020년 여름 지역사회 내 감염이 종식되면서 규제가 풀렸다. 이어 나타난 현상이 소위 명품 구매열풍이었다.
중국, 광저우에 있는 프랑스 고급브랜드 에르메스 본점은 그해 4월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장 첫날, 그 매장의 매출은 무려 270만 달러. 한 매장에서 행해진 일일 매출 최고기록이었다. 중국인들의 보복소비는 애플, 구치 등 다른 브랜드들로 이어졌고, 2021년부터는 미국 유럽 등지로 비슷한 구매열풍이 확산되었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차단당했던 것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마음껏 해봄으로써 한풀이 하듯, 분풀이 하듯 소비를 하는 보복소비의 대표적 카테고리가 여행이다. 팬데믹 동안 집안에 갇혀서 여행은 꿈도 못 꿨던 소비자들은 봉쇄가 풀리면서 대대적으로 호화 여행에 나섰다. 쓰고 싶어도 쓸 기회가 없어 쌓여있었던 돈을 고급 호텔과 휴양지에 쏟아 부었다.
한인들에게는 고국방문이 보복소비인 셈이다. 팬데믹 기간 사랑하는 가족이 그리워도, 가까운 가족친지의 상을 당해도 갈 수 없었던 아픈 경험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그 결핍감을 이번에 기어이 해소하려는 것 같다.
미국에서 보복소비는 올여름이 고비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치솟던 항공권, 호텔의 가격 인상이 완만해졌다. 한바탕의 과소비는 진정되고 소비자들의 생활패턴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말이다. 올여름 비싼 항공권 가격에 놀라 고국방문을 포기한 한인들은 조만간 보다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