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여자의 일생’이란 주제로 글이나 대중가요로 영화까지 등장했던 적이 있었다. 곱게 자란 딸아이를 시집을 보내게 되면 시부모님에, 때로는 시조부까지 섬겨야 했었고, 시동생 시누이 까지 모셔가며 거기에 자식을 위한 노고까지 고달픈 여자의 삶이 줄거리를 이루게 된다. 캄캄한 새벽, 별빛을 보고 눈을 뜨고 찬물에 쌀을 씻어 밥을 앉히면서 시작된 고된 노동 끝에 얻게 되는 먹거리는 겨우 찬밥 한 덩이였다. 반세기 전만해도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무지한 비어가 최근에 이르러서야 고개를 숙이는 흐름이 되었다.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억압받고 길들여져 온 삶의 흔적들이 아직도 남아있다. 가족 간에 사용되었던 언어와 사회 구조 등이 유발해낸 상징적 문화 유산처럼 강력한 신체적 힘을 과시하거나 물리적 언어 폭력을 휘두르며 가족을 다스린다는 명목으로 여편네를 자식들을 제압했던 시대적 삶의 모습이었다. 아버지 비위를 거스르면 밥도 굶고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던 원초적 두려움으로 지탱되었던 전근대적 아버지 권리와 위상에 주눅들며 살아온 아픈 삽화들이 ‘여자의 일생’이란 소재를 제공하기에 충분했었다.
한국은 지금.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젊은 남자들이 시부모님을 모셔야 할 조건이 되면 결혼 하기가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 부모가 재벌이거나 물려받을 것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 남자라면 예외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좋은 대학을 향해 열심히 달려야 하는 이유가 장가 잘 가기 위해서라는 설정 앞에 세계인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명문대 입시를 위한 학습 경쟁은 유치원부터 시작된다. 제대로 된 놀이 문화를 접해 볼 기회도 없었고, 운수대통이면 마마보이로 선발될 수도 있다. 이 학원 저 학원 끌려 다니며 죽어라 공부해야 일류 대학을 뚫을 수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스펙을 만들어야 괜찮은 직장을 구할 수 있고, 치열한 경쟁에서 직장을 얻고 보면 다시금 정규직을 향한 생존경쟁 사투가 시작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궂은일 마다 않고 버텨야 하는 직장에서 승진 경쟁 투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어찌 어찌해서 결혼에 골인하더라도 잠깐의 신혼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고 자식이 태어나면서 아버지의 고군분투는 하루도 쉴 수 없는 새로운 국면에 접하게 된다. 가족 부양 책임자라는 굴레를 쓰고 매일매일 소리 없는 전투에 임하게 된다. 상사비위 맞추기에 때로는 아부가 요구되기도 하고 눈치작전 능력이 강요되기도 하는 전쟁터 병사를 방불케 한다, 전략과 전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운데 때로는 무자비 해야 하고 기만도 서슴없이 자행 해야 하고 통제력도 발동시켜야 한다. 다행히 바람직한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나마 자랑할 만한 전리품이 되기도 하지만 가정에서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어야 하는 이중고의 양면적 삶이 곤욕스러울 만큼 안 팍 두 겹 일에 둘러싸여 있다. 삶이 일인지 일이 삶인지 구분이 어려운 뒤엉킨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네 가족인 아버지들이.
가장이란 이름을 지켜내야 하는 전투에 지쳐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심중에 쌓인 탄식들이 ‘남자의 일생’ 자작곡으로 불리워질 수도 있겠다 싶다.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는 고뇌를 일생 품고 살아가야 하기에 남자의 일생도 여자의 일생 못지 않게 고달프고 서러운 시대로 가고 있다. 어쩌면 남자의 일생이 더 서러울 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 날 이라니, 왜 아버지 날이 필요한지, 어머니 날만 요란 법석한 것이 민망스러워 갸륵하게 아버지 날이 탄생한 것일까. 오늘 하루 만이라도 아버지 존재를 인정해주고 대접해 주겠다는 뜻일까. 오히려 아버지 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은데. 세상 구석진 곳에선 혼신을 쏟아 일하면서 돈을 벌어들이고도 아내에게 홀대 받고 자식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언젠가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라는 구호가 등장했을 무렵 세상은 이미 망가져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자식들은 저 혼자 다 큰 것처럼 유학 길 영어로 아버지 기 죽이기에 변죽을 울리고 여편네의 측은지심 잔소리 열전이 시작되면 입맛이 쓰고 살맛도 쓴 맛이 된다. 하루가 다르게 기운은 쇠진해 지고 사회로부터 변두리 인생으로 밀려나고 집안에서도 편안한 자리를 잃어버렸다. 가부장 시대 흐름에 얹혀 기세를 부렸던 일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먼 기적 소리 같이 아련해 진다.
한국인 특유의 가부장주의 흐름은 나이 들어버린 아버지를 외롭게 만드는 팩트로 작용하게 되었다. 아버지라는 권위가 자녀들과의 소통 부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같이 놀아 주기는 고사하고 호통치고 꾸짖고 훈계하는 일이 아버지 자리라는 무언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한 번도 아버지와 놀아본 경험도 없고 학교에서나 교우관계에서 발생한 고민 거리를 마음껏 털어놓고 조언을 구해본 적도 없었기에 자라면서 듣고 본대로 마냥 무심한 아빠로 훈계하고 억압하며 살아온 후유증이 이토록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아버지 권위만 소중하게 끌어안고 살아온 결과의 초래인 것이다. 어쩌면 그 결과물을 만들어 왔을 지도. 자식들과 자상하게 정을 나누지도 못하고 데면데면 살아온 인생 보루를 이렇듯 허무하게 마주하게 될 줄을 예측하지 못한 탓이려니 하기에는 그 참혹함이 너무 크고 깊다.
오래전 ‘울고 싶은 남자들’이란 책이 출간된 적이 있었는데 지금껏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아들아 나는 너 때문에 울고 싶다. 남자로 산다는 것은 참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힘겨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옛 사대 아버지 상과 이즈음 젊은 아버지 상이 오버랩으로 겹쳐진다. 머리에 서리를 얹어버린 못난 여식은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아버지가 뵙고 싶은 날들이 잦아진다. 아버지가 그립다. 사무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