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인희 (LA미주본사 사회부)
“날씨 좋다!”
요즘 부쩍 자주 하는 말. 흐린 날씨를 보며 ‘날씨 좋다’고 감탄을 하자니 아이러니하긴 한데, 사시사철 햇볕이 쨍쨍한 사막 지역에 살고 있다 보니 흐린 날씨가 귀하게 여겨진다. LA에 살면서 이런 5월 날씨는 처음 겪어본다. 보통 이맘때면 슬슬 높아지는 기온에 덥다고 느껴야 하는데, 올해는 참 이상하다. 새해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몇달 동안이나 지속됐고, 지금은 흐린 날씨로 이어졌다. 심지어 북가주 스키장들은 역대급으로 눈이 내린 덕분에 최소 7월까지는 스키장 운영을 지속할 예정이다.
자외선을 피할 수 있고 야외 활동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서 올해 유독 흐린 날씨에 반가움을 표했지만, 동시에 기후 변화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같아 걱정도 밀려왔다. 남가주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평년과는 다른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은 겨울에도 기온이 높아 스키장 운영이 중단됐는가 하면, 인도의 경우 12월 평균 기온이 122년만에 가장 높았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는 유독 추운 겨울 날씨를 기록했다. 기상학자들은 “이상기후는 기후변화로 인해 기존의 기상 패턴이 변하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세계기상기구(WMO) 지난 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2027년까지 5년 내로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여기서 1.5도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지구 온난화 억제를 위해 제시한 제한선이다. 온도 상승 폭이 해당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지구에는 심각한 홍수, 가뭄, 산불 등 각종 자연재해가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WMO는 3년 넘게 지속된 라니냐 현상이 끝나고 올해 하반기에는 엘니뇨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라니냐 현상은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것이고, 반대로 엘니뇨는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기후현상을 일컫는다. 엘니뇨 현상이 발생하면 지구의 온도는 0.2도 가량 상승한다. WMO는 엘니뇨로 인해 지구온난화 현상이 심해져 역대 최고 고온이 기록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후변화는 지구에 수많은 악영향을 미치는데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강력한 신종 바이러스를 탄생시킬 수 있다. 과학자들은 신종 바이러스 확산과 기후변화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고 설명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시베리아 영구동토층과 빙하가 녹아 수만 년간 얼어 있던 고대 바이러스와 세균이 인류를 위협할 수도 있게 된다. 코로나19 보다 더 지독한 팬데믹이 조만간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2016년 러시아 북시베리아에서는 폭염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노출된 사슴과 접촉한 사람들 중 어린이 1명이 탄저병에 걸려 사망하고, 성인 7명이 감염됐다. 해당 지역에서 탄저병이 발생한 것은 194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음 전염병 대유행은 박쥐나 새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빙하가 녹으면서 되살아난 바이러스에 의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되는 데는 근거가 있다.
또한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갈 수록 따뜻한 지역에 사는 모기의 서식지가 넓어지는데,‘모기’는 다음 팬데믹의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WHO는 다음 팬데믹을 일으킬 잠재력이 있는 동물로 곤충을 지목하며, 곤충을 매개로 하는 감염병 ‘아르보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다음 팬데믹을 주도할 미지의 바이러스 X는 무엇일까. 얼음이 녹아 빠져나온 고대 바이러스일 수도 모기를 통해 전파되는 바이러스일 수도 아니면 아예 새로운 미지의 바이러스 X일 수도 있다. 확실한 사실은 기후변화가 수많은 바이러스를 몰고오고 있다는 것이다. 칼럼을 쓰다 보니 요즘의 흐린 날씨에 ‘날씨 좋다’며 해맑게 반길 때가 아닌 것 같아 간담이 서늘해진다.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에너지 절약, 재활용, 자연 보호)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지만 현재로선 그게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