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람(수필가)
교회에 새로운 부목사님이 부임해 오셨다. 애리조나에서 오셨다고 한다. 우리 목장에 인사를 하러 오셨는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얼굴은 낯이 익는데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 아는 체를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면인 것 같은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해 보지만 퍼뜩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아빠가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을 가져왔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이십 년 전 한국에서 우리 가족이 다니던 교회에 전도사님이셨단다. 그제야 나도 기억이 났다. 내가 딱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 적에 중고등부 전도사님이 그분이었다.
딱 이십 년 만에 이 커다란 미국땅, 같은 교회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애리조나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이번에 가족들과 다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이십 대의 청년이셨는데 지금은 다섯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나도 그 사이에 두 딸을 둔 엄마가 되었다.
주일에는 각자 목장이 다르고 봉사하느라 바쁘다 보니 이야기 나누기가 쉽지 않아 따로 점심 약속을 잡았다. 아이들은 아직 방학을 하지 않아 사모님과 애리조나에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목사님 혼자 식사하는 때가 많다고 들었다. 목사님께 환영 점심을 하자고 했다.
단골 중식당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켜 나누며 어떻게 이렇게 다시 만나느냐고 웃었다.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목사님도 미국 오셔서 아이 다섯 키우며 목회 활동 하며 정신없이 살았다고 한다.
작년에서야 영주권이 나와 그동안 한국도 한 번도 못 가보셨단다. 새로운 사역지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이곳에 새로이 와서 잘 적응하고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엿보였다.
목사님이 옛날 자료들을 찾아보니 사진은 없고 영상 몇 개를 찾았다며 보여 주셨다. 이십 년 전 중고등부 체육대회 영상이었다. 옛날 동영상이라 화질이 좋지 않았지만 반가운 얼굴들만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옛날 앳된 내 모습도 보인다. 한창 사춘기일 때라 영상을 찍는 것에 불만인 듯 한껏 볼멘 얼굴이다. 저 여고생이 커서 벌써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있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 첫째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어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오늘은 목사님네 가족이 다 이사 오는 날이다. 받아둔 주소를 검색해 보니 한 블록 건너에 집이 있다. 애리조나에서 온 식구가 여섯 시간을 달려와 식사도 제대로 못 챙겼을 것 같아 빵과 휴지를 사들고 인사를 갔다. 한창 이사 중이어서 얼른 인사만 하고 나왔다.
우리집도 오 남매여서인지 더욱 마음이 쓰이나 보다. 목사님을 보면 우리를 키운 그 옛날의 엄마,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두 명 키우기도 벅차 하루에도 몇 번씩 할머니, 할아버지를 호출하는데 그때에 엄마, 아빠는 도움받을 곳도 없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엄마가 미국에 와서 친정엄마 없이 애를 낳았을 때 미역국을 한솥 끓여 매번 갖다 주었던 권사님들 이야기를 지금까지도 자주 하는 것을 보면 그때 그게 그렇게 고마웠나 보다. 그때에 그 권사님들은 다 돌아가시고 안 계셔 그 은혜 갚을 길이 없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그분들처럼 뜨끈한 국을 해 먹이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목사님께 다음에 가족들과 같이 우리집에 한번 오시라고 초대했다. 한창 클 나이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먹이면 좋을지 고민이 깊어지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