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낮기온이 부쩍 올라 여름이 들어선 것 마냥 종잡을 수 없었던 5월 날씨라 바로 여름이 들어서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려니 해둔다. 5월의 싱그러운 수다가 ‘화란 춘성 만화 방창’ 극적으로 소란스러운 5월 숲이 눈부시다.
5월5일 입하가 들어섰고 21일이 소만 절기였다. 소만이 들어서면 본격적인 농사철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생장으로 가득하게 된다. 은근한 연녹으로 편만 했던 숲이였는데 어느새 초록으로 충만하다. 연녹색으로 새 잎을 틔우던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초록 색조의 조합을 풀어낸다. 연한 초록이 여실했던 잎들이 점점 명도 짙은 색상 대비를 드러내며 실한 초록으로 순도 조절을 해가며 색상 혼합을 시도하더니 강한 색감을 연출해 내기 시작했다. 예년에 비해 잦았던 비를 반기며 숲을 지켜냈기에 싱그럽고 활기찬 생명력이 차오르고 숲은 더없이 푸르러만 간다. 5월 숲에는 헐벗은 생명이 하나도 없다. 모두 잘 차려 입은 결혼 예식 하객처럼 마음껏 치장에 열중하고는 조금은 들뜨고 덩달아 수다스러움으로 상기되어 있다.
이리도 화사한 계절의 여왕 5월 속에 마냥 머물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문득 사방을 휘 둘러보게 된다. 5월이 익어가면 숲 내음도 익어가고 천지는 짙푸른 초록으로 뒤덮일 것이다. 5월은 팽창해 갈 것이고, 투명해질 것이고, 부풀어 올라 푸르럼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5월이 오면 May 란 이름 그대로 ‘인생의 봄’ ‘젊음’을 뜻하 듯 인생의 꽃 시절인 젊음을 상징하는 계절 이라서 태양의 맑고 밝고 순결 함의 정점을 기대하게 된다. 새롭듯 맑고 산뜻한 청정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주는 5월을 최근에야 만난 것 같다. 바람 흐름도 비단결처럼 신선하고 부드럽다. 천지를 돌아보아도 향기로 가득한 달이다. 들꽃도 들판을 가로지르며 여기 저기 예쁨을 내밀고 따스한 눈웃음을 나누고 있어 5월은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며 생명력 넘치는 색상을 즐겁게 분출해 내고 있다. 무성한 숲을 풍요로 이루어가는 축복의 5월은 소생의 계절로 미쁜 표정짓기에 열중하고 있다. 눈 가는 곳마다 청청한 푸름이 5월의 대지를, 도심을, 들판을 풍족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연출해 내고 있다.
여름맞이 채비로 어찌나 수다가 방만한지 산천 초목이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입춘이 들어서고 봄이 열릴 무렵엔 따스한 봄 기운이 맴돌았는데 폭우 폭설 가뭄 홍수 등 기상이변 급습으로 이 고운 5월 곁에 습한 추위를 몰고와 봄 기운을 제대로 풀어주려나 하는 염려를 넘어 5월 수다는 온통 밝음으로 녹음을 헤집고 다닌다. 열정을 부어줄 햇살이며 새 잎을 틔워낸 숲은 싱그러운 행복 불러들이기에 몰입 하고 있다. 떼지어 나르는 새들의 재잘거림이 교향악처럼 봄 하늘로 높이 번져간다. 목청껏 노래하는 새들 군무까지 5월 수다는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네 몸과 마음 치유에 최적이요 최선이다.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던 햇살이었는데 최근 며칠 동안은 눈부신 태양 향연이 이어져 5월이 흥분하고 뽐낼 만큼 찬란함을 더해주어, 역시 5월은 달콤한 힐링을 안겨주고 빛나는 소망을 심어주었다.
세월은 제 흐름새로 흐르고 있는데 5월이 다 가기도 전에 6월이 들어설 채비하는 걸 보면 한해를 벌써 반이나 떠밀어 보낸 것 같은 세월의 속도감에 흠칫 처량맞음이 밀려든다. 유난히 느낌이 좋았던 사람, 그냥 무작정 기다려지는 사람과 한적한 찻집 창가에 앉아 있는 풍경을 떠올려 본다.
5월의 수다가 무르익어 가는 날, 나눈 것은 많지 않아도 사랑 한줌씩 주고 받은 정겨움을 풍경 속에 삽입하 듯 끼워 넣어본다. 눈부시게 화창한 5월이라서 세월이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이 될 지라도 5월 닮은 꾸밈 없고 가식 없는 맑은 정결한 사람이고 싶다. 근거를 알 수 없는 보고픔으로 봄앓이를 하란 말인가 싶은데 누군지 모를 기억 속에 잠겨있는 그리운 사람에게 까닭 없는 고백을 서로 나누어도 좋을 꿈결같은 5월이다.
아침 무렵엔 분명 봄이었는데 한 낮은 여름이다. 입성도 어느 새 반팔로 바뀌었다. 아이스 크림 생각도 난다. 아직은 봄이려니 해두고 싶은데 이번 여름이 많이 더울 것이란 예보 탓인지 여름을 불러들이고 싶은 마음은 아직이다. 5월을 제대로 정경으로나, 소리로, 느낌으로, 내음으로나 봄날의 멋을 신물날 만큼 만끽하지 못했기에. 봄은 그 존재감을 여과없이 남김없이 드러내 주고 싶은데 눈치없는 여름이 사뭇 기웃대고 있다. 5월은 쉼 없이 우리네 정서에 노크하느라 5월의 수다 속에 잠겨 있지만 인생은 영혼이 고요해져야 할 것 같다. 5월의 수다가 북적거리는 광장과 외 홀로 고요한 골방 묵상 시간을 오가는 것이 인생이라며 균형 잡힌 피날레를 설정해 보지만 못 갖춘 마디의 멋을 추가해 보면 어떨까 싶어 5월의 수다에 귀 기울여 본다.
시대적 아픔에서도 세상 어지러움 에서도 묵묵히 견디노라면 세상이 밝게 열릴 것이라는 위로와 소망을 얻을 것이다. 계절의 여왕 5월에게 아쉬움과 정겨움의 아디오스를 띄워 보낸다. 우린 다시 또 만날 것이기에. 기약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