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지난 12월 20일 Wisconsin 주립대학에 다니는 손자 Ryan이 겨울방학이라 뉴저지 집에 도착을 했는데 4개월 만에 집에 온 Ryan을 본 애견 Husky 애쉬가 반갑고 좋아서 기어 오르고 핥고 비비고 입을 맞추며 꼬리를 흔드는 것을 카톡을 통해 보고 어린시절 시골에 살 때 정든 검둥이 생각이 떠 올랐다.
75년 전 정든 개 검둥이와 신나게 뛰놀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10리가 넘는 장단 고랑포라는 장터에 미국 군인들이 와 있다고 구경을 가자고 해 따라 나섰는데 검둥이가 계속 따라와 집으로 가라고 야단을 치고 쫓아도 다시 쫓아와 어쩔 수없이 배를 타고 같이 임진강을 건너가 30리 가량 가다가 뒤돌아보니 검둥이가 없어져 사방을 찾고 불러도 찾을 수가 없어 포기하고 고랑포로 가 키도 크고 코도 큰 노랑머리 미국사람들을 구경한 다음 장을 보고 돌아오는데 검둥이 생각 때문에 마음이 착잡하고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검둥이가 신나게 뛰어와 반갑다고 끌어안고 핥고 비비고 꼬리를 흔들어 기쁨이 넘쳤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서울 수유리 화계사 인근에 살 때 TV 탤런트 정혜선씨가 털이 하얗고 예쁜 강아지를 갖다 줘 키우게 됐는데 암놈인 그가 우리도 모르게 여러 이성과 바람을 피워 강아지 6마리를 낳았는데 예쁘고 잘 생긴 강아지들은 일찌감치 다른 집으로 입양을 떠나고 못생긴 놈 하나만 남아 우리가 키우게 됐다.
생김새가 별나고 못생긴데다 곰 같기도 해 이름을 곰이라고 지은 후 곰 곰하고 불렀는데 녀석이 자랄수록 정과 의리가 대단해 온 가족과 정이 깊이 들었는데 이민을 떠나게 돼 이민짐을 싸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떻게 알았는지 식음을 전폐하고 슬픈 눈으로 애처롭게 원망을 토해내고 있어 노모님께서 한숨지며 “이 녀석아 네가 아무리 슬퍼해도 너와 나 두고 미국으로 떠날 게다” 하셨다.
나는 그런 곰을, 개를 사랑하고 잘 키울 수 있는 창동에 사는 친구집에다 데려다 주고 미국 Baltimore에다 이민짐을 풀고 2달이 지난 후 창동 친구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곰이 그동안 창동집에서 뛰쳐나가 머나먼 화계사 자기가 살던 집을 찾아가 주인을 찾고 기다리는 것을 3번 씩이나 다시 찾아왔다고 하면서 이웃 사람들이 곰이 옛 주인을 애타게 찾고 기다리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편지를 읽고 우리 가족은 너무나 애처롭고 가슴이 아 팠다.
15년 후 애틀랜타에 정착해 키우게 된 애견 Chow 에스린은 하얀 미색인 예쁜 털과 꼬리가 백합화처럼 아름답고 멋진 녀석인데 어릴 적부터 키워 정이 깊이 들었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반가워 길길이 뛰면서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던 에스린 때문에 하루 종일 손님들과 겪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다 풀리고 기쁨이 넘쳤는데 그의 나이 15살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장기가 뒤틀리는 급성 장염이 발생해 수의사를 찾아가 진찰을 하고 X레이를 찍어본 결과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의사의 권유에 따라 안락사를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에스린을 안고 명복을 빌 때 절망의 슬픈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그를 의사에게 넘겨주고 돌아서면서 너무나 충격이 커 속으로 울음을 씹어 삼켰다.
그 후부터 개를 안 키우게 됐다. 개와 정이 깊으면 깊을 수록 헤어지는 아픔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의 수명이 짧아 언제인가 개를 먼저 떠나보내야 될 그 순간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나라 전 대통령께서는 개를 안고 자랑하면서 키우던 개를 대통령 자리를 떠난 후 개를 키우는 비용이 많다며 매정하게 동물원에 의탁을 했다. 그런데 그런 지도자를 일부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과 국민들이 잘했다고 박수를 치고 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고약한 심성들이다.
여하튼 개는 사람과의 정과 의리와 사랑이 특별한 명물이다. 나는 Husky 에쉬가 4개월 만에 만난 손자 Ryan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난 후 세상이 날이 갈수록 인성이 메마르고 이기적 물질 만능주의로 변하고 각박해도 사람이 개 만도 못하게 된다면 인간사 막장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