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위원)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 미국 금융시장은 돌발적인 ‘펀드런(fund run)’으로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리먼브러더스의 기업어음(CP)을 다량 편입하고 있던 머니마켓펀드(MMF)의 가격 폭락으로 촉발된 펀드런은 미 재무부가 모든 원금을 보장하는 조치를 취하고 나서야 진정됐다. 당시 미 금융시장에서 단기간에 MMF로 흘러 들어간 뭉칫돈은 5,000억 달러로 추산됐다.
요즘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와 투자 심리 침체로 MMF에 뭉칫돈이 유입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따르면 최근 10주간 5,880억 달러가 흘러 들어가면서 MMF 자산은 사상 최대치인 5조 3,000억 달러로 불어났다.
최근 두 달여간 총합계 자산이 5,500억 달러에 이르는 실리콘밸리은행과 시그니처은행·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잇달아 파산하면서 벌어진 현상으로 이자율 4%대인 MMF의 무위험 수익률에 자금이 대거 몰린 것이다.
MMF는 정부가 발행하는 단기 증권 투자를 통해 원금의 안전성과 안정된 이율을 동시에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된 투자신탁 상품이다. 1971년 당시 세계 최대 증권사였던 메릴린치가 처음으로 선보인 MMF ‘리저브 펀드’는 안전·수익성을 앞세워 은행예금만 고집하던 고객들의 발길을 증권회사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MMF는 1973년 석유파동으로 인한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저금리 현상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6일 “미국 경제의 믿을 수 없는 시간(incredible period)이 끝나가고 있다”며 미국 경제의 경착륙을 경고했다. 미국 개인투자자협회의 설문에서는 “6개월 후 증시 하락”을 예상한 응답자가 45%로 강세장 예상(24%)을 압도했다. ‘MMF 뭉칫돈’이 언제 ‘펀드런’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다.
그나마 미국은 달러 발행, 금리 인상 등 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만 미국의 기침에 독감을 걱정해야 하는 한국은 운신의 폭이 훨씬 좁다. 출범 1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 경제팀은 바짝 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