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유모씨는 얼마 전 몇 몇 사람과 함께 동네에 새로 생긴 중국식당을 찾았다가 찝찝한 경험을 했다.
이 식당은 손님이 카운터에서 주문을 한 후 음식이 준비되면 직접 가져다 먹은 후 스스로 치우도록 돼 있는 곳이었다. 음식 주문을 마친 후 계산을 위해 크레딧 카드를 내밀었더니 디지털 페이먼트 기기에 음식 값과 함께 10%에서 30%까지 팁 액수를 고르라는 선택들이 떴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카운터 직원의 얼굴을 본 후 잠시 망설이다 15%를 눌렀다. 80달러인 계산 액수가 순식간에 92달러가 됐다. 자리에 돌아와 팁을 줬다고 하니 일행들은 서비스로 볼 때 팁을 줄 필요가 있는 식당이 아니라며 자신들은 맨 마지막에 있는 ‘노 팁’ 버튼을 누른다고 밝혔다.
음식을 먹는 내내 유씨는 엉겁결에 버튼을 눌렀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팁은 제공받은 서비스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긍정적인 방식이다. 또한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손님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많은 근로자들에 대한 보상의 의미도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팁의 의미가 변질되면서 팁을 받지 않던 업소들에서 팁을 요구하거나 디지털 기기 시스템으로 팁 선택을 하도록 하는 등 사실상 팁을 강요받는 분위기가 확산돼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식당의 경우 10%의 팁은 실질적으로 사라진 상태이며 20% 내외가 보편적이 됐다. 심지어 30% 팁을 은근히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팁 인플레이션 현상은 팬데믹과도 관련이 있다. 팬데믹 기간 중 잘 나가는 전문직들은 필수 노동자들을 돕는다는 뜻에서 지갑을 많이 열었다. 이른바 ‘죄의식 티핑’(guilt tipping)이다. 그러면서 팁 액수가 커졌으며, 비즈니스들이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갔음에도 팁 요청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업소들의 임의적인 팁 요구에 불편함과 어색함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한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계산대 아이패드 스크린에 10%에서 30% 사이의 팁 액수가 뜨더라는 것이다. 그는 ‘노 팁’ 버튼을 누르자 캐시어가 자신을 쏘아보는 것 같았다며 모든 상황이 너무 불쾌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수리공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이밀면서 팁을 요구하더라고 밝힌 소비자도 있다.
태블릿에 주문을 입력해 손님들이 크레딧 카드를 긁는 방식으로 결제를 하고 팁을 줄 수 있도록 해주는 제품이 처음 출시된 것은 지난 2013년. 스퀘어라는 업체의 제품을 필두로 비슷한 제품들이 쏟아지면서 이제는 이런 결제 시스템이 보편화됐다.
디지털 페이먼트 기기가 널리 사용되면서 팁과 관련한 고객들의 불편함은 커졌지만 업소들의 팁 액수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이유는 인간의 지닌 기본적인 속성 때문이다. 바로 ‘디폴트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들에 뜨는 팁 액수들은 디폴트이다. 이것을 거부하려면 ‘노 팁’ 버튼을 눌러 옵트-아웃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옵션을 거부하는 일을 귀찮아하거나 불편해 한다. 특히 종업원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노 팁’ 버튼을 누르기란 쉽지 않다.
이에 대한 테크놀로지 전문가들의 조언은 간단하다. 비즈니스가 팁을 요구하는 테크놀로지는 아무런 감정 없이 숫자만 보여주는 소프트웨어일 뿐이라는 걸 기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팁을 줄지, 준다면 얼마를 줘야 할지를 결정할 때 중립적이고 객관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팁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피하면서 줘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스크린의 버튼을 누를 것이 아니라 현금으로 팁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과도한 티핑과 종업원들의 싸늘한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니 말이다.
감사의 표현이 돼야 할 팁이 ‘호갱’이 된 것 같은 찝찝함만을 안겨준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