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뉴욕한국일보 논설위원)
지난 달 28일 뉴욕 웨스트 44번가에서 약 4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샌드위치 가게 ‘스타 라이트 (STAR LITE) 델리’가 문을 닫았다. 한인 김민씨(71) 부부는 1984년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이 가게를 열고 하루 14시간, 주 7일을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39년을 보냈다. 폐업 이유는 높은 렌트와 고령, 팬데믹 여파 등이라고 한다.
영업 마지막 날, 그의 가게에서 샌드위치와 샐러드, 수프 등을 사먹고 공연장 분장실로 배달된 샌드위치를 먹었던 배우와 제작진, 단골손님들이 몰려들었다. 가게 앞에서 감사 메시지를 담은 액자를 전달하고 ‘해피 트레일스’를 부르며 작별인사를 했다. “우리 모두 미스터 M, 그를 매우 그리워할 것”이라면서….
브로드웨이 사람들은 성실하고 친절했던 김민씨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성금 1만7,839달러를 전했다고 한다. 배우들과 제작진은 팬데믹19로 인한 수년간의 폐업과 불경기로 생계가 어려웠겠고 팬데믹이 끝났다고는 하나 지금도 그들의 주머니는 가난할 것이다. 그런데 한인부부를 위해 푼돈을 모아 거금을 만든 사실이 놀랍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이 뉴스를 보면서 “이 분은 인생을 참 잘 사셨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명 그런 분이 있다. 김용만씨는 86년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 킴스 비디오를 창업했고 유명감독과 배우, 뉴욕대 영화과 학생들, 뉴요커들은 주말이면 이곳에서 비디오를 빌려보았다. 예술성 짙고 희귀한 비디오들이 소장된 킴스 비디오는 한때 11개 점포에 회원 수 25만 명일 정도로 뉴욕 명소였다.
인터넷 발달에 밀려 2008년 킴스 비디오는 문을 닫았고 5만5,000개의 희귀 비디오들은 이태리 시칠리아 섬 소도시 살레미로 실려 갔다. 수년 전 살레미에 정치적 상황이 생기면서 이 비디오들은 작년 3월31일 로어 맨해튼 알라모 드래프트하우스 시네마로 돌아와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러한 김용만씨의 스토리를 담은 다큐 ‘킴스 비디오(Kim’s Video)’는 2023년 1월19일 개막한 제39회 선댄스 영화제 넥스트 부문에 초청됐다. 또 올해 전주국제영화제(4월27일~5월6일)에서 다큐 ‘킴스 비디오’가 상영되면서 김용만씨의 사인을 받고자 관객들이 길게 줄을 서는 등 그의 삶은 또 다른 전성기를 맞았다.
1990년대 초 킴스 비디오에 취재를 간 적이 있는데 5층 건물 전체가 킴스 비디오로 층별로 다양한 비디오들이 일목요연 정리되어있었다. 김씨가 사무실에서 이미자의 음반을 틀어놓고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이미자라 했다. 세계 각국의 문화, 역사, 정치를 총망라한 비디오 월드에서 한국 트로트를 듣다니, K팝의 미래를 내다본 것인가.
낯선 땅에 이민 온 1세들이 주류사회와 연계하여 잘 살아온 삶을 보면서 지금 우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됐다. 1965년 이민개정법이 발표되며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1970년도 이후 연 3만 명의 한인들이, 이민의 절정기인 1985~1987년에는 연 3만5,000명이 미국으로 왔다. 2000년대 들어 그 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보다 잘 살자고, 자녀교육을 위해 이민 온 한인들은 델리가게, 청과상, 생선가게, 세탁소, 네일업 등등 자영업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은 한인들의 자영업 방향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주류 업종이던 세탁, 청과, 네일업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당신, 이민 초창기부터 7일 내내 일하면서 자리를 잡으면 금의환향 하려던 꿈은 실현하였는지, 알뜰살뜰하게 모아 빌딩을 샀고 노후에 자식들에게 재산정리를 하였다는 당신, 모두,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지.
김민씨, 김용만씨처럼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지만 고픈 배를 채워주고 정신적으로 풍요한 삶을 살도록 영향을 끼치는 삶은 어떤가, 참 잘 살았네 하는 말을 듣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당신,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