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성 (LA미주본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대구 서문시장 사랑은 각별하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고 난 후까지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했다. 지난달에도 이곳을 찾았다. 그가 이곳을 좋아하고 자주 찾는 이유는 그의 말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서문시장만 오면 아픈 것도 다 낫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 서문시장에서 기를 받아 가겠다.”
이런 이유를 뒷받침해 주듯 그가 이곳을 찾을 때마다 대구 시민들과 시장 상인들은 열렬히 그를 맞이해준다. 이런 뜨거운 분위기를 즐기면서 그는 낮은 지지율로 인한 고민을 일시적으로나마 털어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이 서문시장의 분위기를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로 착각할까봐 걱정된다”는 뼈 때리는 충고도 나온다.
그가 서문시장을 방문했던 시기에 제주에서는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렸다. 하지만 대통령은 프로야구 시구 등 대구 일정을 이유로 추념식에 불참했다. 표가 다급했던 후보 시절 했던 “절대 4.3 희생자 유가족과 제주 도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윤석열 정부는 다르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던 약속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러면서 나온 “대구는 가면서 제주는 안 간다”는 지적 속에는 마음 편한 곳은 필요 이상으로 찾아다니면서도 불편한 곳은 회피하는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묻어 있다.
‘가는 곳’만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도 너무 가린다.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이렇게 야당을 기피한 대통령은 없었다. 취임 후 1년 동안 야당 대표와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만남을 갖지 않았다. 과거 보수 대통령들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대선에서 자기와 경쟁했던 인사에 대한 불편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야당 대표와의 회동을 계속 피하는 것은 정치력의 부재를 스스로 드러내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협치’ 운운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심지어 ‘관저 식사’조차 여당 내에서 자기와 코드가 맞는 인사들만 부른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턱걸이 당선을 한 그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지난 1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그의 이런 다짐은 그저 구두선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윤석열 식의 공정과 상식 적용원칙처럼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선택적’이다. 편한 것들은 가까이 하고 불편한 것들은 아예 배제하거나 외면하려는 모습이 너무 두드러진다.
여기에 언론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기면서 “이전 정부에서는 없었던 것”이라며 자랑으로 내세웠던 출근길 약식문답은 지난 11월 갑작스레 중단됐다. 데일리 약식문답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후 언론의 질문을 받는 일까지 아예 멈춰 버렸다. 취임 1년 기자회견을 할지조차 불투명하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이 있다. 루틴화된 일상에서부터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스트레스나 불안을 느끼지 않는 편안한 환경이 있다는 말이다. 바로 ‘컴포트 존’(comfort zone)이라 불리는 공간과 영역이다.
누구에게나 ‘컴포트 존’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이런 안정감만을 추구할 경우 잠재적인 성장의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 된다. 특히 관계의 ‘컴포트 존’에 안주하는 것은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막아버리게 된다. 안전지대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성장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다섯 사람을 평균한 존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국가지도자가 자기와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만 만나고 가장 편하게 느끼는 장소와 공간만을 찾는다면 자신의 시각과 인식을 보다 확장할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일이 된다.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될 기회를 스스로 원천 차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끼리끼리’의 루틴을 깨고 불편한 존재들과 기꺼이 대면하고 손을 잡는, ‘컴포트 존’을 깨는 결단과 용기가 대통령에게는 요구된다. 그런데 윤 대통령에게서는 이런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는 게 장삼이사들에게는 개인의 성장을 위한 선택의 문제겠지만, 대통령에게는 결코 피해서는 안 될 기본책무이다.
대통령은 편안한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불편해질수록 국민들이 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이 자각하고 남은 4년 자신의 ‘컴포트 존’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