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이(심리상담사)
상담실에 찾아오는 내담자의 대부분의 호소 문제는 우울증과 불안장애이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 할수록 그들의 우울과 불안의 깊은 뿌리에는 관계의 어려움, 특히 부부나 가족과의 갈등을 보게된다. 우울과 불안이란 증상만 줄이는 치료가 아닌 증상의 뿌리인 관계를 이해하고 갈등패턴을 바꾸는 게 더 근본적인 치료란 생각을 자주 했다.
예전에 관계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어떤 커플은 아내도 괜찮고, 남편도 괜찮은데 왜 둘의 관계는 행복하지 않을까? 반대로 어떤 커플은 두 사람 모두 좀 이상하고 별로인데 둘은 찰떡궁합처럼 잘 살까?” 계속 관계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던 중에 ‘이마고 관계치료’ 훈련과 ‘커플과 가족치료’로 학위를 받고, 현장에서 많은 부부상담을 해오며 두 사람이 만드는 패턴과 상호작용이 관계의 핵심임을 알게 되었다.
많은 연구들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성장 후 친밀한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그 관계패턴을 반복한다고 말한다. 이마고(라틴어로 이미지) 관계치료에서는 어린 시절 양육자에게 원했으나 받지 못한 욕구가 ‘미해결과제’로 남아 부모의 이마고를 가진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고, 부모에게 받지 못한 것을 그에게 받으려는 무의식 힘겨루기를 계속한다고 설명한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우리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느끼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거북이처럼 에너지를 내면으로 당기는 ‘축소자’가 되거나, 반대로 천둥번개 치듯이 에너지를 밖으로 뿜어내는 ‘확대자’가 된다.
축소자는 화가 나거나 겁에 질리면 거북이처럼 머리를 집어넣고 숨는다. 그런데 이런 축소자는 자신과는 아주 다른 확대자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확대자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과도하게 너그럽거나 달라붙는 경향이 있고 불분명한 경계선을 갖는다. 감정의 과장이 많고 말이 많으며 갈등상황에서 비난과 공격적이 된다.
그럴 때 축소자는 뒤로 철회하고 셧다운한다. 그러면 확대자는 ‘왜 당신은 나랑 말을 안해요? 왜 혼자 있으려해요?’라며 계속 쫓아간다. 한쪽은 숨막혀 도망가고 한쪽은 불안해서 계속 따라가는 ‘무의식 게임’이 바로 두 사람이 만드는 상호작용 패턴인 것이다. 견디다 못한 축소자가 버럭 화를 내거나 따라갈 수 없게 숨어버리면 두 사람이 하던 ‘게임’은 고통스러운 단절로 끝이 난다.
커플이 만드는 이 상호작용 패턴을 배우기 전에는 싸우면 입을 꼭 다물고 도망가서 숨던 남편이 이해가 안 되서 숨은 그를 계속 찾아내서 비난했었다. 그런데 관계의 패러다임을 배우고 패턴을 알아차린 후에는 단절의 고통으로 힘든 나에게 ‘버려지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상기시켜주었다.
확대자는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는 대신 단절로 인한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고 평소에 자기 돌봄과 자기위로 능력을 훈련함이 필요하다. 반면 축소자는 갈등상황에서 침묵하며 셧다운하는 대신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큼 필요한지 배우자에게 말해주는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두 사람은 ‘따라가고 도망가는 게임’을 멈추고 새로운 관계의 상호작용을 만들게 된다.
지난 몇년 동안 패턴을 바꾸는 훈련으로 확대자인 내가 버려지는 느낌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따라가서 비난하지 않으니 관계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축소자 남편은 덜 숨고 말이 더 많아지는 새로운 패턴을 경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