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다가 <관계> 속에서 끝을 맺습니다. 이 관계는 크게 세가지 형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첫째, <만남>입니다. 둘째, <헤어짐>입니다. 셋째, <방문>입니다. 이 세 가지 관계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인연의 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누군가를 방문할 때, 유대인들은 그 인사법이 독특합니다. <샬롬>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안녕하십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인사법입니다.
성경 속에서 대표적인 만남의 인사법으로 “평안하십니까?”의 뜻으로는 “나아만 장군”이 선지자 “엘리사의 종, 게하시”를 만났을 때 사용한 인사법이 바로 “샬롬”이었습니다(왕하 5:21). 초대 교회를 이끌었던 능력의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갇혀서 밤새 찬송을 불렀을 때 돌연한 지진으로 “파옥(破獄)의 대이변”이 일어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던 간수(看守)에게 사도 바울은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에 있노라”고 절체절명의 목숨을 건져주었습니다. 바로 그 간수가 상관의 명령하달로 옥중의 바울과 헤어지려는 순간에 “샬롬”이라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행16:36). 마지막으로, 이웃을 방문할 때 “샬롬”이라고 합니다. 마 10:12에,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런데, 본문은 평범한 일상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이 상황은 이미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무덤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신 상황>입니다. “역전의 상황(Sitz im Leben, 짓쯔 임 레벤, Setting in life)”이 벌어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무덤에 있어야 할 상식적 상황을 하늘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셔서 다시 살아나신 놀라운 <생명의 기적>이 일어난 “역전의 상황”으로 이미 완료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움(Fear)”과 “불안함(Anxiety)”으로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의 아둔함 속에 빠져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셔서 그들과의 만남의 인사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고 그들의 두려움과 근심을 일시에 몰아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상처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셨습니다.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요 20:20) 상처입은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어 보내시며 헤어질 때 하신 인사가 “샬롬”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1).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불신하고 의심하여 문을 굳게 잠그고 두문불출했던 도마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Peace Be With You!)”하고 샬롬 인사를 건네셨습니다(요 20:26). 이 <로고스 예수님>은 말씀이 성육신하셔서 임재하신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요 1:14). 언약은 “약속(예언)”과 “성취(결실)”의 패러다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평강의 왕으로 오실 것을 이사야가 예언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평강의 왕이라.” 사 9:6).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6).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은 세상과 구별되어진 기쁨의 평안(Joy)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평강은 일회성에 불과한 재미의 평안(Fun)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평강 속에는 <생명>이 있고, 세상이 주는 평강 속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평강은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희생하셔서 얻은 희생의 결실이기에 결단코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축복>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강 속에는 예수님 말씀처럼 “근심과 두려움”이 우리 곁을 떠날 날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샬롬”은 일상적 인사의 범주를 넘어 세상이 가져다 주는 평강과는 분명히 다른 주님의 평강입니다.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