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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의 시선] 시니어모델 오디션, 그 뜨거운 현장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4-12 12:53:35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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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LA미주본사 논설실장)

“언제나 오른발부터 나갑니다. 흔들거리지 말고 몸의 중심을 잘 잡고 걸으세요. 시선은 정면, 심사위원을 향합니다. 바닥보지 말고요. 심사위원들 앞까지 가면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번, 포즈를 취한 다음 그대로 턴해서 다시 걸어옵니다. 팔은 너무 많이 흔들지 마세요.”

지난 8일 아로마 센터 5층, 시니어모델 오디션 현장은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로 후끈했다. 오디션이 진행 중인 대연회장은 문이 굳게 닫혀있고, 주변에서는 워킹 연습이 한창이었다. 가슴에 번호표를 붙인 지원자들이 선배 모델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걷고 또 걷는다. 처음엔 어색하고 뻘쭘하던 사람들이 이윽고 익숙해진 듯하면 다음 팀이 또 연습 라인에 도착하고, 다시 일 열로 늘어서서 구령에 따라 걸어갔다 돌아오는 연습이 계속된다.

오는 10월 LA한인축제의 실버패션쇼 무대에 오를 모델을 선정하는 오디션은 한 마디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지원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는지, 현장 분위기는 어떤지 등등이 궁금해서 찾아간 자리였다. 솔직히 말하면 선입견이 있었다.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재미삼아 나왔을 거라는 생각, 심사라는 것도 대충 젊은 모습과 날씬한 몸매 등 외모 위주로 뽑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이런 안일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무엇보다 ‘재미삼아’ 나온 후보는 단 한명도 없어보였다. 다들 어찌나 열심이고 간절한지, 진심을 담아 오디션에 임하는 시니어들의 태도는 장난 아니게 열띠고 진지했다. 

후보들은 번호순으로 한번에 4~5명씩 팀을 이뤄 오디션 장으로 들어간다. 상당히 큰 홀, 까마득히 멀어 보이는 거리에 심사위원 5명이 앉아있다. 그 광경만으로도 충분히 위축되는데 첫발을 떼는 순간부터 온 몸이 떨리기 시작하고, 심사위원들 앞에 서면 머릿속이 하얘진다고들 했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은 각자 30초, 곧이어 심사위원들의 질문이 쏟아지고, 인터뷰가 끝나면 다같이 그룹 워킹 한번, 한 사람씩 솔로 워킹 한번을 선보인다. 

이렇게 한 그룹의 심사에 걸리는 시간은 12~15분,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오디션에 심사위원들은 아침 9시부터 종일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강행군 심사로 녹초가 된 모습이었다.  

심사기준은 외모가 첫째가 아니라 워킹과 곧은 자세가 가장 중요했다. 또 모델 일에 대한 헌신과 열의는 필수조건, 선발되면 5~6개월 동안 매 주말 혹독한 훈련을 거친 후 무대에 서게 되는데 그만큼 노력할 준비가 돼있는지를 반드시 질문했다. 아울러 훈련을 통해 얼마큼 변화할 잠재력이 있는지, 그 가능성을 헤아리는 심사위원들의 논의도 사이사이 이어졌다.

실버모델협회 KAMA USA(회장 박영미)가 개최한 제4기 오디션에는 250여명이 신청, 그 중 절반가량이 서류심사를 통과해 이날 오디션에 참가했다. 최종 60명을 선정하니 경쟁률이 3대 1인 셈. 그런데 2019년 한인사회에서 처음 시니어모델을 선발했던 제1기 오디션에는 무려 430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7대 1에 달했다니, 1기 회원들의 자부심이 특별히 높고 모델협회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높은 이유가 그 때문인 듯하다.

오디션에서 후보들이 밝힌 지원 동기는 대부분 주위에서 가족, 친구들이 꼭 한번 나가보라며 출전을 권유했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이들이 말하는 모델지망 사연들은 다음과 같다.

남은 인생 한번 멋지게 살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참가했습니다.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왔어요. 60세가 됐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도전하자고 결심했지요. 평생 키가 작은 콤플렉스가 있었고 모델 같은 건 꿈도 못 꿨지만 이제 용기를 냈습니다. 애들 다 컸으니 이제 내 인생 살고 싶어요. 안 해본 거니까 그냥 한번 해보려구요. 여자인 나를 더 충분히 느끼고 싶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나를 가꾸고 나 하고 싶은거 발산하면서 살고 싶어요.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새로운 사람들 만나고 싶네요….   

건축가, 피아니스트, 가정주부, 인테리어 디자이너, 은퇴 LAPD 오피서, 변호사사무실 사무장, 디즈니랜드호텔 셰프, 자영업자, 의류업 종사자, 치과의사였다가 탱고댄서가 된 여성, 한국어 통역사, 교육구 급식담당 매니저, 부동산 에이전트, 간호사, 월남전 참전용사, 교수, 골프 싱글 실력을 가진 여성 등 그야말로 각계각층 다양한 후보들을 만났다. 절대다수가 여성이었지만 남성 팀도 몇 그룹 있었고, 부부가 함께 도전한 사람들도 3팀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운동과 등산과 노래를 좋아한다는 점, 그리고 도전정신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77세에 아직도 매년 고강도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있었고, 81세 여성후보는 매일 푸시업 100번, 스쿼트 100번씩 한다며 후손들에게 나이 들어도 이런 대회에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한 70대 남성은 그 자리에서 다리를 일자로 스플릿 하는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고, 런던 베를린 도쿄 등 세계 마라톤대회를 다니며 뛴다는 여성 마라톤 매니아도 있었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활동이 위축됐던 실버모델협회가 이제 제대로 꽃을 피우고 있다. 그동안 무대에 설 기회가 거의 없었어도 나태해질까봐 매달 워킹 훈련을 해왔다는 박영미 회장은 LA한인축제 실버패션쇼 외에도 올해 대여섯 차례의 큰 행사를 앞두고 있어 회원들이 크게 고무돼있다고 소개했다.

바야흐로 시니어 세상, ‘젊은 노인’들의 인생 2기에 대한 기대와 열정을 목격한 것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오디션에 뽑히든 안 뽑히든, 모든 실버모델 후보들이 그 열정을 잃지 않고 늘 몸과 마음을 관리하며 새롭게 도전하는 삶을 지켜가기를 바란다.                   

[정숙희의 시선] 시니어모델 오디션, 그 뜨거운 현장
정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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