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혜(한울 한국학교 교장)
자신을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라고 칭하는 작가 심혜경은 어떻게 해서 공부하는 할머니가 되었을까? 그녀를 움직인 것은 알베르 카뮈의 한 문장이었다. “삶은 건축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연소시켜야할 대상이다.”
젊을 때는 와닿지 않았던 말이었지만 인생 후반부에 들어서자 더 이상은 미루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태극권과 수채화, 기타와 피아노, 다도, 뜨개질까지 뭐든 마음 내키는 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육아를 끝내고 외출할 여유가 생겼을 때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영어영문학, 중어중문학, 일본학, 프랑스 언어문화학을 공부했다. 지루한 시간을 덜어내려고 인생에 끌어들였던 공부가 어느새 취미가 되어버렸다.
최근 남편이 지역 매매사이트에서 수학의 정석을 팔겠다는 광고를 보고 책을 사왔다. 왜 갑자기 수학책을 구하느냐고 물었더니 공부로 만났을 때 미처 느끼지 못한 수학의 매력을 제대로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팔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예쁜 뜨개옷을 우리 아이들에게 때때마다 만들어 입혀주셨다. TV를 보면서도 한 코의 삐뚤어짐 없이 뭐든 척척 만들어내는 마법 손은 주변에 뜨개질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언제라도 뜨개질 교실로 이끌었다.
‘학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스쿨 school’은 ‘노는 곳’을 뜻하는 그리스어 ‘스콜레 schole’에서 온 말이다. 애초에 학교는 ‘놀며 대화를 나누는 곳’이었다. 학창시절의 학교에서는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이 어원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더라도 나이가 들어서 만나는 학교에서라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시작부터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좋다. 무조건 깊게 파고들어야한다는 강박 없이 여러 세계의 문을 주저 없이 열었다가 미련 없이 닫으며 자유자재로 오가는 공부는, 삶의 권태를 물리치고 즐겁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로마의 정치가 카토는 여든의 나이에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예순을 넘긴 나이에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 아흔 살의 나이로 생을 마친 미켈란젤로의 좌우명은 “나는 아직도 공부한다.”였다고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나이에 대한 의무감과 선입견이 많다.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공부의 목적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두고 즐긴다면, 부담을 내려놓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꿈을 밀고 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다. 우리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을 스스로 믿는 만큼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것이다.”(도스토옙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