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1936년 9월20일 감악산 내리막 인진강 굽이쳐 돌아가는 그림같은 농가인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가월리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나는 아버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일제 하에 태어난 나는 일본어를 배우고 바보처럼 일본이 우리나라인 줄 알다가 8.15 광복 후 중학교를 다닐 때 6.25 남침을 당했다.
3.8선 인근에 살던 우리 가족은 국군, 인민군, UN군, 중공군이 처절하게 죽이고 죽어가는 전쟁의 현장에서 생사의 고비를 겪고 또 피난 중에는 보리겨로 죽을 쑤어 먹고 나무장사와 가짜 반지장사 구두닦이 등을 하면서 UN군 부대 인근에서 꿀꿀이죽을 먹고 살다가 운좋게 Canada군부대(R.C.R) 식당에서 그릇을 닦다가 배우게 된 요리솜씨를 인정받아 요리사가 돼 Canada 군인 식당 책임자로 승진했다가 휴전이 된 후 다시 복학을 해 하숙과 자취를 해가며 책장사를 하고 학교를 다니다가 중대부고 윤복현 교감 선생님을 만나 인생의 새 전기를 맞게 됐다.
선생님의 적극적인 권유와 후원으로 연극 영화과를 선택했고 그 때문에 연극을 하다가 KBS TV 탤런트가 되고 배우가 돼 11년간 30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던 중 이민을 떠난 윤복현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고심 끝에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대망의 꿈을 안고 1974년 미국 Baltimore에 이민짐을 풀고 가구공으로 일을 하다가 2개월 후 한국사람이 하나도 없는 시골 Dublin Georgia에 가발가게를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후 Lafayette Louisiana와 Houston Texas에서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다 Atlanta에 정착하게 됐다.
그동안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님과 우연히 만나게 된 인연들을 통해 도움과 사랑을 받는 빚을 많이 지고 살아왔다. 한국 정부와 Canada 군부대 및 미국정부로부터 받은 혜택과 빚이 있고 낯선 한국인 상점을 애용해 준 미국 고객들께도 많은 빚을 졌다. 그리고 애틀랜타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 브라질의 고 윤복현 선생님과 뉴욕의 고등학교 동창인 최원용씨 부부와 LA의 오한식, 박종율 부부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빚을 갚을 길이 없고 애틀랜타에 홍재호 사장 부부가 베풀어 준 사랑의 빚이 너무나 많고 크다. 홍 사장 덕분에 유럽 여행을 했고 그 후에도 계속 여행비를 만들어 주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그 고마움을 영원히 잊지 않고 간직하련다.
그 외에 Chattanooga 고 이기수 회장과 박영규 사장, 최왈수 사장 및 김철, 송동철 사장 및 Jonesbore 금불 유사장에게 빚을 많이 졌다. 그리고 한국학교 이국자 이사장으로부터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김태형, 송종규, 박선근, 김학규, 조중식, 김백규, 신현식, 심중구, 김동식, 김문성, 이수, 최광복씨와 동남부 지역 김영오, 신현태, 이웅길, 이규철, 이한성씨와 중대부고 배기성, 이홍기, 한상철, 박종오씨와 중대동문 홍재걸씨 및 조선일보 이국진 사장, 한국일보 조미정 사장, 중앙일보 이종호 사장과 기자분들에게도 사랑을 많이 받고 빚을 많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