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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의 시선] 오스카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3-22 13:49:40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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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LA미주본사 논설실장)

아시안 영화인들의 대축제였던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다음날, 뉴욕타임스에 흥미로운 칼럼이 게재됐다. “오스카 연기상은 왜 남자와 여자를 나누어 시상하는가?” 

말하자면 감독상, 편집상, 극본상, 촬영상, 음악상 등의 부문은 남녀 구분 없이 단일 수상자를 내는데 왜 유독 주연상과 조연상 부문만 남녀 따로 주느냐는 내용의 글이다. LA 타임스 역시 작년 말에 비슷한 논조의 오피니언을 내놓은 바 있다. “이제는 할리웃의 성차별적 유산을 끝낼 때”라는 제목의 사설이 그것이다. 

두 신문의 내용과 논조는 좀 다르지만 결론은 유사하다. 연기란 자아를 초월해 다른 존재의 경험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므로 굳이 성 구분이 필요 없다는 것, 그리고 성정체성이 다양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이제 젠더를 남성과 여성으로만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상 시상식에서 주연상과 조연상을 남녀 따로 선정하는 것은 오랜 세월 아주 당연한 의식으로 여겨져왔다. 이것은 오스카의 유산으로, 아카데미영화예술학회(AMPAS)는 1929년 할리웃 루즈벨트 호텔에서 개최한 세계 최초의 영화상 시상식 제1회 때부터 연기상을 남자와 여자에게 따로 수여했다. 첫 시상식은 영화인들의 프라이빗 디너였으나 2회 때부터 라디오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유명해졌고, 이후에 생겨난 골든글로브(1944), 토니상(47), 에미상(49), 그래미상(59) 등이 모두 오스카의 모델을 따라 수상부문을 만들고 선정해 왔다. 

그런데 당시 연기상을 남녀 따로 시상했던 것은 성차별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을 배려한 조처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할리웃 영화계는 완전히 남자들의 세계였다. 남성이 쓰고, 감독하고, 주연한 남성 시각의 영화들만 만들었으니 연기상 수상자는 언제나 남자배우만 선정될 것이 뻔했다. 여주인공이래야 남주인공의 들러리 역할을 하는 청순가련형의 배우들이 주를 이뤘고 연기상을 수상할 만한 역 자체가 드물었다. 따라서 여배우에게도 주연과 조연상을 따로 챙겨줌으로써 어느 정도 형평성을 유지하고, 또 시상식에 미모의 여배우를 내세우면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러나 100년 세월이 지난 지금, 세상은 많이 변했다. 물론 아직도 할리웃은 백인남성들의 세상이다. 하지만 영화의 제작 극본 감독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크게 늘어났고, 여배우들의 위상도 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UCLA 사회과학대학의 연례보고서인 2022 할리웃 다양성 리포트(Hollywood Diversity Report)에 따르면 2021년 개봉된 영화들 중에 여성이 주역인 작품이 47.2%였고, 2020-21 시즌에 방송된 TV쇼에서의 여성 주역 비율은 44.3%였다. 다만 수적으로 많아졌다고 해서 수상 비율도 같이 증가한 것은 아니어서 2021년 여성이 주연한 영화가 오스카상(어느 부문이든)을 수상한 비율은 25%에 그쳤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이제 더 이상 성 구분과 성차별이 남성 대 여성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는 사실이다. 요즘 자주 접하는 단어 LGBT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도 남성도 아닌 ‘넌 바이너리’(non-binary) 혹은 ‘젠더퀴어’(genderqueer)라고 규정짓는 배우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넷플릭스 시리즈 ‘더 크라운’에서 다이애너비 역을 맡아 골든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스크린 배우조합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엠마 코린(27)은 2021년 커밍아웃을 한 후 에미상에 후보지명 됐을 때 자신을 ‘넌-젠더’ 카테고리에 넣어달라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켰다. 또 최근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인 저스틴 데이빗 설리번이 토니상 후보에 오르고 싶지 않다고 선언해 업계를 놀래켰다. 자신은 ‘트랜스 넌 바이너리’이므로 특정성별 부문에 후보지명 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문제는 이처럼 재능 있는 배우들 가운데 제3의 성을 가진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는 데에 있다. 오스카를 비롯하여 골든 글로브, 에미상, 토니상 등 권위 있는 시상기관들이 연기상의 남녀 구분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해법을 내놓아야할 필요가 대두되는 이유다.      

실제로 이미 몇몇 시상식들은 성 중립적(gender-neutral)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그래미상은 2012년부터 남자가수와 여자가수의 구분을 없애고 모든 부문에서 ‘베스트’만을 선정하고 있고, MTV상 역시 2017년 이후 성 중립적 시상식을 개최해왔다. 

이를 본보기로 영화상도 남자 여자 제3의 성 모두를 포함한 후보들 중에서 최고 연기자 한사람을 뽑으면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영화 팬들의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다. 매년 4개 부문에서 4명이 수상해왔는데 갑자기 2개 부문 2명으로 줄면 그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도 고민해야한다.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은 시상식에서 가장 관심이 뜨겁고 인기 있는 부문이므로 이를 반 토막 내면 가뜩이나 저조한 시청률이 더 내려갈 위험도 크다.

LA영화비평가협회(LAFCA)는 지난 12월 열린 시상식 때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주연상과 조연상 부문에서 남녀 구분을 없애는 대신 후보들을 각 10명씩 지명하고, 수상자는 2명씩, 총 4명을 선정했다. 이것도 한 방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어느 해는 전원 남성이, 어느 해는 전원 여성이 수상하여 편향 논란이 불거질 소지를 안게 될 것이다.   

성 정체성 이슈는 낯설고, 어렵고, 불편하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여권에도 성별표기 란에 남성(M), 여성(F)과 함께 버젓이 제3의 성(젠더X) 항목이 있는 시대, 다양성을 포용하려 더 노력해야겠다.     

정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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