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여러 매체를 통해 만나지는 기사들 중 삶을 포기해 버리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만나게 된다. 여러 유형과 경우마다 남다른 연유를 안고 있어 더러는 수긍하며 더 이상 돌파구를 찾지 못한 딱하고 기막힘에 동조 되기도 하지만 이해 되지 않는 불행한 기사들 중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목표를 이룬 자들이 어찌 감사와 만족에 이르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여려 분야에서 더 이상의 절정이 없는 최고의 자리 매김에 이른 자들이 생을 포기하는 길을 택하거나 마약에 손을 대는 이유는 왜일까 싶다 목표에 도달되어지고 달성과 성취를 얻는다 해서 그 성취의 순간에 얻어지는 만족감을 시간이 지난 후에까지 부러움을 살만한 상태를 유지할 수가 없었던 것일까. 어쩌면 목표가 무지개는 아니었을까. 목표라는 고지를 향해 노력이란 과정 끝에 결과를 얻게 되었지만 저들은 낙원에서 마냥 거닐 순 없었던 것일까. 성취를 관철해낸 고지를 포기해 버림에 대한 해답은 목표를 이룬 결과보다 과정의 행복을 간과해버린 건 아니었을까.
인생은 어쩌면 실패를 징검다리 삼으며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기억 저변으로 밀려나 버린 줄 알았던 낭패의 기억들로 하여 실패는 두려움의 안개 속을 헤매기도 하고 다시 시작해 보려는 용기 마저 스스로가 만든 올가미 덫에 걸려들고 만다. 걸음마를 익힐 때도 수없이 넘어지면서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걸음마를 배운다. 밥을 손수 먹는 일도 흘리기를 수 없이 반복했고, 수영을 배울 때도 수영장 물을 수없이 먹어가면서 수영을 배우게 된 이 모든 씁쓸한 과정들이 있었기에 목표로 다가서게 된 것이다. 참다운 생의 승리자는 실패에 연연하며 머물러있지 않는다. 방황하는 가운데서도 실패를 수 없이 묵상했지만 얼른 털고 일어나 재가에 도전하는 자만이 다시금 승리를 향한 도전의 발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실패란 새로운 목표를 삼을 수 있는 징검다리일 뿐이다.
일상 중에 흔히들 ’힘들다’는 말을 쉽게 입에 담곤 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직장인은 직장에서, 사업가들은 사업의 길이 힘들다고 아우성 하고 푸념하면서 살아간다. 인생이란 험준한 산을 넘고 아득한 골짜기를 빠져나가는 것이다. 힘든 과정을 인내하는 동안 조개 속에서 진주가 형성되 듯 삶의 보람이 진주처럼 은은한 빛을 발산하게 될 것이다. 진주는 인내, 슬픔이 만들어 낸 보석이다. 조개를 괴롭히는 불순물을 인고로 품어냈기에 생성된 것이 눈부신 진주이다. 오래 전부터 은은한 기품을 상징해 왔듯 고통을 인내로 품으며 참고 견디다 보면 진주같은 인생을 꽃 피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모하고 꿈꾸는 삶의 목표를 다 이루고 안게 되는 만족감은 결국 가시적이 것이 되어버리고 참다운 만족과 행복은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 과정에서 얻어 진다는 것이다. 이루러 낸 목표도 어쩌면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는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 작은 과정의 일부 일 수도 있을 것이나, 꿈을 이룬 후에 갖게 되는 성취욕의 기쁨보다 목표를 이루어가는 경로 중에 행복을 발견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를 진행해 가는 노정에서 좌절의 고통까지 인고 끝에 견고한 문으로 들어서도록 디딤돌이 되어준 것도 소홀히 여기거나 홀대해서는 안될
일이다. 과정의 행복을 채집하지 못한 이룸은 사상누각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수 많은 등산가들의 꿈인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 또한 과정 없는 이룸은 없다는 것이다. 과정은 목표를 향한 일치를 이루어 가는 고결한 생의 가치이다. 설정한 목표를 향해서 내딛고 있는 일련의 과정이 관철해낸 결과가 있기에 모든 과정들을 거치는 동안 일상의 작은 편린들이 서로 마주치며 얽히기 마련이다. 크고 작은 편린들이 고스란히 담긴 묶음을 집중해서 들여다 보면 아름다운 땀방울이 고여 있기도 하고 빛나는 지혜가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과정은 순간 순간의 시간이 모여 지금이 되고 미래가 되고 흘러가 버린 과거로 머물러 있기도 한다. 목적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순간들의 만족감을 위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바름을 향한 접근이요 바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과정 속에서 삶의 여정이 진액으로 숙성되는 아름다움을 간과하고 목표만을 지향하며 달려 간다는 것은 마치 유년시절의 운동회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체 계주에서 바통을 두고 무작정 달리는 데만 열중하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 아닐까. 과정을 통해 미래가 보이고, 과정을 통해 목표는 점점 더 선명해진다. 과연 최상의 목표를 쟁취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게 주어질 만족의 결과가 되는 것일까. 아닐 것이란 확률의 공산이 더 높을 수도 있음이다. 목표의 이룸과 함께 과정에서 얻어지는 행복감도 유실 치 않으며 누림을 위해 보듬어야 할 것이다. 목표는 무지개가 아니다. 해서 목표와 과정은 삶을 위대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