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중 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출퇴근을 안 해도 되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근무하라고 하니 처음에는 불만도 많았다. 집안에 갇혀 지내는 게 답답했고, 가족들 간의 마찰도 심했다. 온 가족이 하루 24시간 주 7일 복닥거리며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젊은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직장일 하랴, 어린자녀들 돌보랴, 삼시세끼 식사 준비하랴 …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재택근무에는 여러 좋은 점들이 있었다. 출근 때마다 화장하고 옷 챙겨 입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교통체증 뚫고 출퇴근하며 겪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니 좋았다. 매일 길에서 버려지던 시간은 온전히 ‘내 시간’이 되었다. 거실에서 옆방,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출근’하면서 “출퇴근이 공간이동 하듯 이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팬데믹 기간 사회적 봉쇄는 이웃 간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백화점도 식당도 극장도 운동시설도 모두 닫혔으니 기껏 하는 활동은 주변 산책하고 근처 마켓에서 장보는 정도. 덕분에 전에는 얼굴 볼 일 없던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마주치며 눈인사 나누고 마스크 너머로 대화를 나누며 이웃 간의 정이 살아났다. 멀리 출퇴근하며 정신없이 사는 대신 동네를 무대로 오순도순 사는 삶도 정겹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건 일반 직장인들만이 아니었다. 팬데믹 중 자동차 운행이 줄면서 탄소배출량이 확 줄어드는 걸 지켜본 도시설계 전문가들이 새로운 도시를 꿈꾸기 시작했다. 팬데믹으로 강제되었던 생활방식을 실제 도시에 도입해보자는 구상이다. 주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일상생활이 가능한 작은 도시를 만든다면 사람에게도 좋고 지구 환경에도 좋으리라는 착상이다. 요즘 뜨고 있는 ‘15분 도시’ 개념이다.
‘15분 도시’란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도보 또는 자전거로 15분 거리 안에 있도록 조성된 도시이다. 사는 집, 근무하는 사무실, 장보는 마켓, 샤핑하는 상가, 아이들 학교 그 외 레스토랑, 극장, 공원, 병원 등이 모두 가까워 굳이 자동차 없이도 살 수가 있다.
‘15분 도시’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은 파리, 소르본 대학 도시설계학자인 카를로 모레노 교수이다. 지난 2016년 이 말을 만들어내면서 그는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고 신체활동을 늘림으로써 지속가능성과 건강을 증진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덜 타고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면 건강에 좋을 것은 자명한 일. 뚱보는 줄고 근육질의 탄탄한 체격은 늘어날 것이다. 아울러 탄소배출이 줄면서 기후변화 속도가 늦춰지니 일석이조이다.
현재 ‘15분 도시’는 세계 각 지역에서 신개념 도시로 뜨고 있다. 그중 돋보이는 곳은 프랑스 파리. 파리 최초의 여성시장인 안 이달고는 도시 곳곳에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도로들을 만들어 차량운행을 금지하고, 녹지공간을 조성하면서 파리를 15분 생활권들로 나누고 있다.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도시를 구역별로 쪼개면 부유층 지역과 빈곤층 지역이 갈라지면서 사회적 격차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생각해보면 ‘15분 도시’는 과거로의 회귀이다. 과거 소도시/시골 생활이 그러했다. 주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면서 15분 정도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웃들과 매일 마주치니 서로 잘 알고, 아는 만큼 정이 깊었다. 정겨웠던 추억의 삶이 인간에게는 가장 잘 맞는 생활방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