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뉴스칼럼] '15분 도시'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3-07 12:58:48

뉴스칼럼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팬데믹 중 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출퇴근을 안 해도 되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근무하라고 하니 처음에는 불만도 많았다. 집안에 갇혀 지내는 게 답답했고, 가족들 간의 마찰도 심했다. 온 가족이 하루 24시간 주 7일 복닥거리며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젊은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직장일 하랴, 어린자녀들 돌보랴, 삼시세끼 식사 준비하랴 …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재택근무에는 여러 좋은 점들이 있었다. 출근 때마다 화장하고 옷 챙겨 입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교통체증 뚫고 출퇴근하며 겪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니 좋았다. 매일 길에서 버려지던 시간은 온전히 ‘내 시간’이 되었다. 거실에서 옆방,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출근’하면서 “출퇴근이 공간이동 하듯 이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팬데믹 기간 사회적 봉쇄는 이웃 간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백화점도 식당도 극장도 운동시설도 모두 닫혔으니 기껏 하는 활동은 주변 산책하고 근처 마켓에서 장보는 정도. 덕분에 전에는 얼굴 볼 일 없던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마주치며 눈인사 나누고 마스크 너머로 대화를 나누며 이웃 간의 정이 살아났다. 멀리 출퇴근하며 정신없이 사는 대신 동네를 무대로 오순도순 사는 삶도 정겹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한 건 일반 직장인들만이 아니었다. 팬데믹 중 자동차 운행이 줄면서 탄소배출량이 확 줄어드는 걸 지켜본 도시설계 전문가들이 새로운 도시를 꿈꾸기 시작했다. 팬데믹으로 강제되었던 생활방식을 실제 도시에 도입해보자는 구상이다. 주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일상생활이 가능한 작은 도시를 만든다면 사람에게도 좋고 지구 환경에도 좋으리라는 착상이다. 요즘 뜨고 있는 ‘15분 도시’ 개념이다.  

‘15분 도시’란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도보 또는 자전거로 15분 거리 안에 있도록 조성된 도시이다. 사는 집, 근무하는 사무실, 장보는 마켓, 샤핑하는 상가, 아이들 학교 그 외 레스토랑, 극장, 공원, 병원 등이 모두 가까워 굳이 자동차 없이도 살 수가 있다.

‘15분 도시’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은 파리, 소르본 대학 도시설계학자인 카를로 모레노 교수이다. 지난 2016년 이 말을 만들어내면서 그는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고 신체활동을 늘림으로써 지속가능성과 건강을 증진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덜 타고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면 건강에 좋을 것은 자명한 일. 뚱보는 줄고 근육질의 탄탄한 체격은 늘어날 것이다. 아울러 탄소배출이 줄면서 기후변화 속도가 늦춰지니 일석이조이다. 

현재 ‘15분 도시’는 세계 각 지역에서 신개념 도시로 뜨고 있다. 그중 돋보이는 곳은 프랑스 파리. 파리 최초의 여성시장인 안 이달고는 도시 곳곳에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도로들을 만들어 차량운행을 금지하고, 녹지공간을 조성하면서 파리를 15분 생활권들로 나누고 있다.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도시를 구역별로 쪼개면 부유층 지역과 빈곤층 지역이 갈라지면서 사회적 격차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생각해보면 ‘15분 도시’는 과거로의 회귀이다. 과거 소도시/시골 생활이 그러했다. 주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면서 15분 정도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웃들과 매일 마주치니 서로 잘 알고, 아는 만큼 정이 깊었다. 정겨웠던 추억의 삶이 인간에게는 가장 잘 맞는 생활방식인가 보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법률칼럼] 추방 작전 준비 완료

케빈 김 법무사  2025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본격적으로 실행할 준비를 마쳤다. 톰 호먼(Tom Homa

[벌레박사 칼럼] 터마이트 관리 얼마만에 해야 하나?

요즘 들어 타주에서 이사 온 고객들로부터 터마이트 관리에 대한 문의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 타주에서는 터마이트 관리를 안 했는데, 조지아는 터마이트가 많아서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

[행복한 아침] 세월 속에서 만난 새해

김정자(시인·수필가)     지난 해 연말과 새해 연시를 기해 다사다난한 일들로 얼룩졌다. 미국 39대 대통령을 역임하신 지미 카터 전 대통령께서 12월 29일 향연 100세로 별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새로움의 초대

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새해의 밝은 햇살이 가득한 아침이다. 연휴에 분주하게 지내느라 새로움을 마주하는 희망찬 의지를 다질 새도 없었다. 새해부터 경건해야 할 삶의 질서

[신앙칼럼] 명품인생, 명품신앙(Luxury Life, Luxury Faith, 로마서Romans 12:2)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지금 조금 힘쓰면 영혼이 큰 평화와 영원한 기쁨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인생을 <명품인생(Luxury Life)>이라 과감하

[리 혹스테이더 칼럼] 벼랑 끝에 선 유럽
[리 혹스테이더 칼럼] 벼랑 끝에 선 유럽

유럽은 산적한 위협의 한 복판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전통적인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들끓는 분노 속에 침몰했다. 경제는 둔화세를 보이거나 기껏해야 답보상태

[오늘과 내일]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작년 12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떼면서 지난 1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순간에 우리는 질문해 본다. 지난 한해 동안 행복하셨습니까? 후회되고 아쉬웠던 일은 없

[정숙희의 시선] 타마라 드 렘피카 @ 드영 뮤지엄
[정숙희의 시선] 타마라 드 렘피카 @ 드영 뮤지엄

굉장히 낯선 이름의 이 화가는 100년 전 유럽과 미국의 화단을 매혹했던 경이로운 여성이다.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이자 파격의 아이콘이며 사교계의 총아이기도 했던 그녀는 남자와 여

[에세이] 묵사발의 맛

꽃동네에서 먹은 묵사발은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처음 꽃동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수녀님들이 꽃을 많이 가꾸며 가는 동네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시와 수필] 하늘 아래 사람임이 부끄러운 시대여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