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운(LA미주본사 경제부 기자)
거시 경제의 최대 리스크가 돌고 돌아 다시 물가가 됐다. 지난해 연초부터 인플레이션 심화로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 전년 대비 7~8%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은 연말 들어 하락하면서 잡히는 듯 했다.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RB·연준)가 기준 금리를 대폭 올린 것이 주효했다. 결과적으로 긴축이 불러오는 경기 침체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인플레이션은 조금씩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연초 물가를 보니 아니었다. 지난달 24일 발표된 1월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4%를 기록해 전월(5.3%) 보다 오히려 상황이 나빠졌다. 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반등한 것은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PCE는 연준이 공식적으로 참고하는 인플레이션 데이터로 정책 결정에서 CPI보다 우선된다.
정말 물가는 잡히지 않는 것일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물가 지표에 선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데이터들이 그동안 꾸준히 하방 사이클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CPI의 선행 지표로 알려진 ISM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지난해 오랜 기간 하락했다. 최근 반등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6개월 시차를 고려하면 CPI는 더 떨어지는 것이 맞다.
한인들의 샤핑 고민을 키우는 농산물 가격도 마찬가지다. 미국 음식품 가격은 비료 가격과 상관계수가 높다. 비료 가격은 지난해 고점 대비 큰 폭 하락했는데 향후 그로서리 비용도 떨어질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조류 독감 같은 예외적인 문제로 달걀 가격이 폭등하는 것까지 데이터로 미리 확인하기는 힘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기에 더해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문제인 주거비도 향후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대도시 집값을 지표화한 S&P코어로직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는 지난해 하반기 6개월 연속해서 떨어졌다. 계약 기간 문제로 시차가 발생하지만 곧 주거비도 낮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각종 선행 지표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물가의 방향성이다. 경제는 과학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 살아가는 현실이다. 인플레이션은 올라갈 때 매월 꾸준히 상승하지 않는 것처럼 내려올 때도 매끄럽게 하향 안정화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달 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물가 하락세는) 매끄럽지 않고 아마 울퉁불퉁(bumpy)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인플레이션을 대하는 연준의 자세도 중요하다. 지난달 22일 공개된 2월 FOMC 의사록은 당일 회의를 마친 직후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라는 단어를 연속해서 언급한 것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매파적이었다. FOMC 이후 고용지표와 물가지표가 모두 인플레이션 심화를 가리키자 의사록을 작성하면서 비둘기적인 내용을 모두 지운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 정도다. 중요한 점은 연준의 물가를 잡으려는 의지가 매우 강력하다는 것이다.
물가 외 상황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말 세계 경제를 공포에 빠뜨렸던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이제 줄어둔 것이 사실이다. 증시 등 시장 참여자들은 물론 정부 당국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경기 침체를 피할 수만 있다면 인플레이션은 사실 괜찮은 것이다. 경기 침체는 대량 실업을 동반한다. 올해 들어서도 꺾이지 않는 고용 지표의 연속성을 보면 미국의 경제가 둔화인지 호황인지 헷갈릴 정도다.
매일을 살아가기 바쁜 한인들에게 경제 호황은 가격 걱정 없이 마음껏 샤핑 카트를 채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근 약 1년은 분명히 경제 불황이 맞다. 다만 해가 떠오르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상황은 조금씩 개선될 것이다. 그날이 빨리 찾아오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