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봄비가 올 때에…구하라…주시리라.” 계절의 봄의 하이라이트는 <3, 4월>을 두고 말합니다. 이 봄을 이스라엘 계절은 “늦은 봄”이라 일컫습니다. <비>를 하나님이 내리시는 <대자연의 종합 비타민>에 비유합니다. 그 까닭은 3, 4월경에 내리는 비는 곡식을 성숙시키고 여물게 하는 <긴요한 비>이기 때문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봄비>가 올 때에,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 하나님의 신실한 축복의 언약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보배로운 말씀인 산상보훈의 말씀, 마태복음 7:7에서 예수님은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언약의 축복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봄의 계절에 가장 긴요한 <봄비>는 삼라만상의 대자연이 가을에 맞이할 풍성한 수확의 기쁨의 열매들을 위해 절실한 것처럼 “구하면 주시겠다”는 <봄꽃 예수님>은 지금이 바야흐로 “구할 때”임을 선포하십니다. 수확의 기쁨이 인간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을 분명히 깨달은 스가랴는 왜 “봄비가 올 때 구하라!”고 선포했을까? <물음표(Question Mark)>를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2월 22일,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를 기점으로 40일간의 “봄비 예수, 봄꽃 예수”를 진지하고 숙연하게 맞이하여야 할 “영혼의 봄비”가 올 때입니다. 겨우내 벌거벗은 나무들, 돌같이 굳었던 땅에서 파아란 새싹이 돋아날 때가 바로 봄비가 오는 “3, 4월”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지난 3년간 혹독한 시련의 코로나 바이러스 콤플렉스로부터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생명의 움”을 틔울 때입니다. 열매가 견실하고 수확이 풍성할 수 있기 위해 “봄비”가 올 때에 농부가 간절히 간구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계절에도 <영혼의 사순절>을 맞이하여 <봄>이 찾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혼의 사순절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모든 인류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봄비>이시기 때문입니다. <봄비>를 맞아야 생명이 새싹을 잉태하고, 그 새싹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는 <안식처>가 될 수 있고, 공중의 새들에게는 피곤한 날개를 접고 안착할 수 있는 <쉼터>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봄비 예수>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절실한지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삶의 무게, 고뇌의 무게, 실수와 죄의 무게, 절망과 번민의 무게로 인하여 <삶의 파국>을 맞이하여 절망의 포로가 된 세상을 향하여 <긍휼과 자비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마7:8) 스가랴 선지자는 “봄비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는 동일한 언약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황량한 들녁에 봄비가 오면 파릇한 새싹의 푸르름을 선사하고, 메마른 대지와 나무들에게 봄비가 오면 아름다운 봄꽃들과 새싹이 새옷을 입혀주게 되는 이 <대자연의 철칙>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창을 여시고 <봄비>를 내리셔야만 합니다. <봄꽃 예수님>이<긍휼과 자비의 은혜>를 베푸셔야 합니다. 자연의 축복의 근원이 되는 봄비는 축복의 근원이신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에, 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도 오직 봄꽃 예수님 한 분 뿐이시기에, 스가랴는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우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과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 언약합니다(슥10:1). <봄비> 없이는 자연은 한 톨의 양식도 맺을 수 없듯이 하나님 없이, 구주 예수님 없이 인생은 결코 살 수 없습니다. 현하, <영혼의 사순절>은 40일간만 십자가의 예수님을 생각하라는 목적이 결코 아닙니다. 인생의 영혼구원을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들풀 같은 우리 인생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시6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