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최(수필가)
100세 시대라고 하니 막연히 나도 100세까지 살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2022년 1월 통계청 자료를 보니 80세까지 사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고 축복인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총인구는 5,180만 1,449명이다. 연령별로는 71세 27만7,387명, 75세 18만2,172명, 80세 10만2,370명, 90세 1만6,019명, 99세 648명 순이다. 연령별 생존 확률을 보면 70세 80%, 75세 54%, 80세 30%, 85세 15%, 90세 5%다. 다시 말해 80세가 되면 100명중 70명이 저세상으로 가고, 90세가 되면 100명 가운데 95명은 저세상으로 가고 5명만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확률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평균 나이는 76세에서 78세 정도라는 것이다. 인생무상이라더니 어느새 7학년(70대)이 되고 보니 위의 숫자들이 가슴에 와닿는다.
꽃은 피어도 소리를 내지 않고, 새는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7학년이란 나이는 기쁜 일이 있어도 소리 내어 웃을 수가 없고, 슬픈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일 수가 없다. 윤기 흐르는 긴 머리카락 빗어 넘기며 미소 짓던 그녀도 7학년이 되고 보니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서재, 그녀는 거실…, 꿀이 많아야 벌들이 모여들고 정을 베풀어야 사람도 모이는데, 텅 빈 항아리 같은 7학년이 되었다.
탈 없이 살아도 남은 인생 10년 남짓, 건강은 몸을 단련해야 얻을 수 있고, 행복은 마음을 단련해야 얻을 수 있는 것… 세상이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은 친구뿐이더라. 내면보다 외모에 더 집착하는 삶은 알맹이보다 포장지가 더 비싼 선물 같은 것. 친절한 사람도 좋고 달콤한 사람도 좋지만 묵묵히 그저 내 곁에 오래 머물러주는 사람이 제일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아야했다.
지난달 세상 떠난 친구의 영정 사진 생각하니 이 세상 떠날 때 남기고 갈 영정사진 하나는 찍어 두어야겠다. 우리 시대에도 부모님 돌아가신 후 산소에 몇 번이나 다녀왔는가? 하물며 요즘 시대에 무덤 찾아와 꽃 한송이 놓고 갈 자식 얼마나 있을까마는, 나는 멀리 들판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묻히고 싶다. 내 손으로 직접 지은 비문으로 작은 비석도 하나 세워두고 싶다.
동창회 명부를 보니 다정했던 친구들 이름 위에 줄이 그어져 있다. 무엇이 그리 급해 서둘러 떠났을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고의든 실수였든 누군가에게 정직하지 못했던 일, 상처 주고 손해를 끼쳤던 일들을 신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겠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는데” 하늘에 지은 죄는 없는지도 생각해 보아야겠다.
인생이란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 같은 것, 해가 뜨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 인간의 노화는 그 어떤 의학으로도 막을 길이 없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고, 멈추지 않는 바람도 없으며, 지지 않는 꽃도 없다. 사랑도 젊음도, 기쁨도 슬픔도,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오늘은 남은 내 생의 첫날이다. 왕복표가 없는 인생, 그동안 감사했음을 알고 빈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조병화 시인의 ‘겨울’이란 시 한편을 되뇌어 본다.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