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LA미주본사 논설위원)
“난 아이가 둘 있어요. 아이가 둘 있어요. 걔들이 날 두고 갈 수는 없어요. 날 두고 죽을 수는 없어요.”
건물들이 허접 쓰레기처럼 무너져 내린 동네 모퉁이에서 한 여성이 울부짖고 있다. 어린자식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이다. 그 옆에서 길 건너 수색작업을 함께 지켜보는 대여섯명 여성들의 얼굴도 비통함으로 일그러져있다.
“제발 신이시여, 힘을 주세요. 제발 힘을 주세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건물 잔해더미 위에서 가족을 찾던 한 남성은 주저앉아 통곡을 한다. 산더미 같은 콘크리트 잔해 어느 구석에 가족이 묻혀있는 건지, 살아있기는 한 건지 … 엄습하는 절망감에 남성은 몸부림친다. 뉴욕타임스가 전하는 지진피해 현장 동영상에 담긴 광경들이다.
지난 6일 새벽 튀르키예 대지진이 발생한 지 오늘로 사흘째. 원자폭탄 맞은 듯 처참하게 무너진 동네마다 주민들은 콘크리트 더미 앞에서 희망과 불안으로 가슴을 졸인다. 잔해더미 저 아래 어딘 가에 가족이 살아있으리라는 희망에 맨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들을 헤치고, 헤치기를 여러 날,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은 커진다.
기적은 있어서, 지진 발생 72시간 만에도 생존자들은 발견되고, 구조대와 시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신들. 사망자는 이미 2만을 넘어섰다. 2023년 새해가 이런 비극으로 시작되어야 하는가.
진도 7.8의 이번 지진은 튀르키예 사상 최악의 대지진으로 꼽힌다. 이번 지진은 진도도 강했지만 피해를 키울 여러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우선 진원으로부터의 거리가 짧았다. 지진대가 인구 밀집지역 바로 밑을 통과하는 데다 진원이 지표면으로부터 불과 6마일(강도 7.5의 여진)과 11마일(첫 번째 지진) 아래여서 충격이 엄청났다. 지반이 단단한 암반층이 아니라 부드러운 퇴적층이어서 진동이 더 심했던 것도 피해를 키웠다.
지진 발생 시간과 시기도 문제. 모두 깨어있는 낮이 아니라 집안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새벽 4시 15분에 발생, 인명피해가 훨씬 컸다. 겨울이어서 폭설과 폭우, 추위가 구조대의 접근과 구조작업을 더디게 한 것도 문제다. 생존과 구조를 모두 어렵게 하는 악조건이다.
아울러 부실한 건물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진활동이 활발한 지역에서 내진보강 건축은 필수이다. 건물이 사람을 살릴 수가 있다. 이번 피해지역의 건물들 대부분은 내진규정이 생기기 이전 건물이거나 규정을 무시한 부실공사의 산물이었다. 정부의 허술한 지진 대비책까지 더해지면서 이번 참사는 인재이기도 하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남가주 주민들에게 지진은 남의 일이 아니다. 빅원(진도 8 이상)이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어온 지 수십년이다. 지난 2008년 연방 지질조사국과 학계는 남가주에서 7.8 강진 발생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피해정도가 미 역사상 자연재해로는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근 1,800명이 사망하고, 5만명이 부상하며, 50만~100만명이 집을 잃고, 수도 가스 전기 셀폰서비스 등이 한동안 끊길 것이라는 추정이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자연재해는 인간으로서 넘어설 수 없는 한계이다. 자연이 무자비한 파괴력을 동원할 때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숨고 피할 뿐 저항은 불가하다. 특히 지진은 언제 발생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피해가 더욱 크다. 수천년 된 유적들이 한순간에 돌 더미가 되고, 수십년 보금자리들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 튀르키예 참사를 보며 인간의 조건을 실감한다.
인간은 첫째, 대자연 앞에서 지극히 작고 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지난 수백년 인간은 너무 오만했다. 문명이라는 이름,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했다. 자연을 훼손하고 이용할수록 문명국이 되는 줄 알았다. 결과는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기후변화이다. 태풍, 산불, 해일, 홍수 등 자연재해는 날로 극심해지고 날로 잦아지고 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너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 겸손해져야 하겠다.
둘째,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오늘 살아있다고 내일도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번 지진으로 2만 명은 자신의 목숨을 잃었고, 그 몇 배에 달하는 사람들은 가족을 잃었다. 죽음은 언제 찾아들지 모르는 손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해야 하겠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시간을 감사해야 하겠다. 그렇게 오늘 이 시간을 최대한 잘 살아야 하겠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재해는 고통이지만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가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약한 존재라는 자각은 마음을 열게 한다. 튀르키예 재해 현장마다 구조대와 성금, 구호물품이 답지하고 있다. 같은 인간이니 그저 돕고 싶은 마음, 인류애이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인류는 하나가 되어 다시 일어나곤 했다. 지옥의 한가운데서 천국이 펼쳐지는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