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엘리트 학원
이규 레스토랑

[권정희의 세상읽기] 대지진이 주는 교훈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2-10 12:48:12

권정희의 세상읽기, LA미주본사 논설위원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권정희(LA미주본사 논설위원)

 

“난 아이가 둘 있어요. 아이가 둘 있어요. 걔들이 날 두고 갈 수는 없어요. 날 두고 죽을 수는 없어요.” 

건물들이 허접 쓰레기처럼 무너져 내린 동네 모퉁이에서 한 여성이 울부짖고 있다. 어린자식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이다. 그 옆에서 길 건너 수색작업을 함께 지켜보는 대여섯명 여성들의 얼굴도 비통함으로 일그러져있다. 

“제발 신이시여, 힘을 주세요. 제발 힘을 주세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건물 잔해더미 위에서 가족을 찾던 한 남성은 주저앉아 통곡을 한다. 산더미 같은 콘크리트 잔해 어느 구석에 가족이 묻혀있는 건지, 살아있기는 한 건지 … 엄습하는 절망감에 남성은 몸부림친다. 뉴욕타임스가 전하는 지진피해 현장 동영상에 담긴 광경들이다. 

지난 6일 새벽 튀르키예 대지진이 발생한 지 오늘로 사흘째. 원자폭탄 맞은 듯 처참하게 무너진 동네마다 주민들은 콘크리트 더미 앞에서 희망과 불안으로 가슴을 졸인다. 잔해더미 저 아래 어딘 가에 가족이 살아있으리라는 희망에 맨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들을 헤치고, 헤치기를 여러 날,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은 커진다. 

기적은 있어서, 지진 발생 72시간 만에도 생존자들은 발견되고, 구조대와 시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신들. 사망자는 이미 2만을 넘어섰다. 2023년 새해가 이런 비극으로 시작되어야 하는가. 

진도 7.8의 이번 지진은 튀르키예 사상 최악의 대지진으로 꼽힌다. 이번 지진은 진도도 강했지만 피해를 키울 여러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우선 진원으로부터의 거리가 짧았다. 지진대가 인구 밀집지역 바로 밑을 통과하는 데다 진원이 지표면으로부터 불과 6마일(강도 7.5의 여진)과 11마일(첫 번째 지진) 아래여서 충격이 엄청났다. 지반이 단단한 암반층이 아니라 부드러운 퇴적층이어서 진동이 더 심했던 것도 피해를 키웠다. 

지진 발생 시간과 시기도 문제. 모두 깨어있는 낮이 아니라 집안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새벽 4시 15분에 발생, 인명피해가 훨씬 컸다. 겨울이어서 폭설과 폭우, 추위가 구조대의 접근과 구조작업을 더디게 한 것도 문제다. 생존과 구조를 모두 어렵게 하는 악조건이다. 

아울러 부실한 건물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진활동이 활발한 지역에서 내진보강 건축은 필수이다. 건물이 사람을 살릴 수가 있다. 이번 피해지역의 건물들 대부분은 내진규정이 생기기 이전 건물이거나 규정을 무시한 부실공사의 산물이었다. 정부의 허술한 지진 대비책까지 더해지면서 이번 참사는 인재이기도 하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남가주 주민들에게 지진은 남의 일이 아니다. 빅원(진도 8 이상)이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는 경고를 들어온 지 수십년이다. 지난 2008년 연방 지질조사국과 학계는 남가주에서 7.8 강진 발생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피해정도가 미 역사상 자연재해로는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근 1,800명이 사망하고, 5만명이 부상하며, 50만~100만명이 집을 잃고, 수도 가스 전기 셀폰서비스 등이 한동안 끊길 것이라는 추정이다. 아비규환의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자연재해는 인간으로서 넘어설 수 없는 한계이다. 자연이 무자비한 파괴력을 동원할 때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숨고 피할 뿐 저항은 불가하다. 특히 지진은 언제 발생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피해가 더욱 크다. 수천년 된 유적들이 한순간에 돌 더미가 되고, 수십년 보금자리들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 튀르키예 참사를 보며 인간의 조건을 실감한다. 

인간은 첫째, 대자연 앞에서 지극히 작고 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지난 수백년 인간은 너무 오만했다. 문명이라는 이름,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했다. 자연을 훼손하고 이용할수록 문명국이 되는 줄 알았다. 결과는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기후변화이다. 태풍, 산불, 해일, 홍수 등 자연재해는 날로 극심해지고 날로 잦아지고 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너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 겸손해져야 하겠다.

둘째,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오늘 살아있다고 내일도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번 지진으로 2만 명은 자신의 목숨을 잃었고, 그 몇 배에 달하는 사람들은 가족을 잃었다. 죽음은 언제 찾아들지 모르는 손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해야 하겠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시간을 감사해야 하겠다. 그렇게 오늘 이 시간을 최대한 잘 살아야 하겠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재해는 고통이지만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가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약한 존재라는 자각은 마음을 열게 한다. 튀르키예 재해 현장마다 구조대와 성금, 구호물품이 답지하고 있다. 같은 인간이니 그저 돕고 싶은 마음, 인류애이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인류는 하나가 되어 다시 일어나곤 했다. 지옥의 한가운데서 천국이 펼쳐지는 기적이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한자와 명언]  備 考 (비고)

*갖출 비(人-12, 5급) *생각할 고(老-6, 6급) “계획은 ○○가 없으면 실패하고, 사업은 ○○가 없으면 패망한다.” 공란에 적절한 말은? 먼저 ‘그 표의 비고란에 적어 놓

[조윤성의 하프타임] 패배의 고통에 너무 매몰되지 말라
[조윤성의 하프타임] 패배의 고통에 너무 매몰되지 말라

20세기 막바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세기말적 현상들 가운데 하나는 ‘정치의 종교화’이다. 정치가 점차 합리적 판단과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 믿음과 맹신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삶과 생각] 위대한 미국인 장학재단(GASF)

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지난 10월 31일 위대한 미국인 장학재단(박선근 이사장)은 제2회 장학생 모집과 선발에 관한 기자회견을 했다. 선발신청은 2024년 1

[시와 수필] 희망은 삶에서 누린 가장 멋진 축복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희망은 한마리 새영혼 위에 걸터 앉아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그칠 줄을 모른다.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아무리 심한 폭풍도많은 이의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란 무엇인가?

최선호 보험전문인 흘러가는 세월이 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과학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명제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내 마음의 시] 가을이  오네
[내 마음의 시] 가을이  오네

이 종 호(애틀랜타문학회 회원) 너무 덥다고밀어 보내지 않아도떠날 때 알고 있는 여름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금새 떠날걸 알면서도호들갑 떨며 아우성치던 우리는 언제 그랬냐고 

[애틀랜타 칼럼] 인생의 사계절(사추기)

이용희 목사인생의 사계절 중 중년기 그 중에서도 남성의 중년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중년을 묶고 있는 몇 개의 사슬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정체감의 혼란입니다. 중년기는 흔

[전문가 칼럼] 이번 가을의 Medicare 공개 등록 기간이 특히 중요한 이유
[전문가 칼럼] 이번 가을의 Medicare 공개 등록 기간이 특히 중요한 이유

연례 Medicare 공개 등록 기간은 2024년 10월 15일부터 2024년 12월 7일까지입니다. 또한 주 건강보험 마켓플레이스 (State’s Health Insurance

[벌레박사 칼럼] 가을철 벌레 관리는 이렇게…

벌레박사 썬박페스트 콘트롤 비즈니스를 오래 하다보니, 아침에 일어 나면 자동적으로 TV를 켜고 그날의 일기예보를 본다. 비즈니스 특징상 그날의 기온이 얼마나 변화가 있는지, 비와

[법률칼럼] 결혼영주권과 가정폭력

케빈 김 법무사   미국 이민 과정에서 종종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이중 결혼과 가정폭력 관련된 사례다. 가장 흔한 예로, 이미 미국에서 결혼한 사람이 한국으로 가서 자신을 총각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