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성(LA미주본사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은 다변가이다. 달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말을 많이 한다. 지난 대선 과정 초반에 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한 전직 언론인은 윤 대통령을 묘사하며 “1시간이면 혼자 59분을 얘기한다”고 밝힌바 있다. 1시간 중 59분은 조금 과장이 섞였겠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의 말에는 귀를 잘 기울이지 않고 자기 말만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또 선배뻘 되는 인사들이 뭔가 조언을 할라치면 “누구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역정을 내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스타일은 대통령이 돼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을 많이 하는 윤 대통령의 스타일은 재난 참사현장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됐다. 수해참사 현장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전날 자신의 퇴근길 풍경을 떠벌리기에 바빴던 대통령의 모습에 많은 국민들은 절망했다. 이태원 참사 관련 회의석상에서 경찰을 쥐 잡듯이 몰아세우며 그가 한 발언을 정리해 보면 무려 1만자가 넘는다. 그러니 장관들이나 참모들이 과연 이런 대통령 앞에서 얼마나 자신들의 소신이나 생각을 드러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멀쩡한 청와대를 버리고 고집을 부려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한 윤 대통령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국민의 궁금증에 수시로 답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도어스테핑이란 생소한 형식의 약식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대통령실 이전을 정당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기자들이 대통령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로 볼만 했다.
하지만 이런 파격은 지속되지 못했다. 몇 달도 채우지 못한 채 도어스테핑은 중단됐다. 출근길 문답에서 대통령이 정제되지 못한 발언들을 자주 함으로써 그의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또 윤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편한 질문들은 노골적으로 무시하거나 패싱하는 선택적 태도로 도어스테핑의 취지를 스스로 퇴색시켰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마주하는 게 부담되고 불편했는지 결국 도어스테핑은 61회 만에 사라졌다. 언론과의 대면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일방향 소통’이었다. 일방향 소통은 불통에 다름 아니다.
윤 대통령의 일방향 소통은 신년사 발표로 극치에 달했다. 그는 대통령실 참모들만 배석한 가운데 9분20초 동안 원고를 읽은 후 내려갔다. 언론의 질문도, 지켜보는 기자들도 없었다. 도어스테핑을 중단하면서 대통령실은 “더 깊이 있게 더 밀도 있게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채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진정성이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대통령의 불통 행보를 보면 더욱 그렇다.
정치는 국민들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정치인이 아무리 고결한 이상과 국민들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해도 말을 통해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그것을 이해할 길은 없다. 정치인들, 특히 국가지도자들에게 기자회견은 국민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된다. 현안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면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언론들의 질문을 통해 제기되는 국민들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10명을 취재해 백악관 터줏대감으로 불렸던 헬렌 토마스(2013년 작고)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추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대통령에게 일문일답을 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국민과의 직접적인 소통 창구가 얼마나 열려 있는지가 민주주의의 척도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런 소통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민생회의니 국정과제 점검회의니 하는 내부 회의들을 비싼 TV 전파를 낭비해가며 생중계로 내보내도록 한 것을 보니 ‘소통’이 아닌 ‘쇼통’만으로도 지지율을 충분히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 계산하고 있는 것 같다.
도어스테핑의 문을 닫아 버린 윤 대통령은 국민들이 묻고 싶어하는 질문들과 마주할 자신감도, 또 그럴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는 이런 대면을 차단해 주는 ‘버블’ 안에 들어가 있는 지금 아주 편안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국민들과 언론들 앞에 서는 것이 법률적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많은 질문들을 받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현안들을 보다 더 잘 이해하려 노력해야 할 동기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소통의 실종이 길어질수록 대통령의 의식세계가 현실로부터 더 동떨어질 것이라 우려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국가지도자라면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도 거친 질문들에 맞서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을만한 결기와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말은 정말 많이 하면서도 정작 소통의 언어는 회피하는 윤 대통령에게서는 이것을 찾아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