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이번 주, 브렉시트(Brexit)가 3주년을 맞았다. 공교롭게도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영국 경제가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주요 경제국 가운데 가장 저조한 성적을 낼 것이라는 우울한 평결을 내놓았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은 이후 서방세계를 관통한 포퓰리즘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브렉시트는 주요 경제국이 자국 최대 시장과의 관계를 격하하는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2021년, EU는 영국 전체 수출물량 가운데 42%를 받아들였다.) 영국 유권자들은 이처럼 민족주의와 정치를 경제에 앞세웠다.
영업투자에서 수출과 고용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측면에서 영국은 다른 주요 국가들에 뒤처졌다. 싱크탱크 학자인 존 스프링포드는 이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최대 교역상대에 무역, 투자와 이민 장벽을 설치한 국가는 무역량, 투자액과 GDP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영국은 노동력 부족에서 소기업들의 수출부진, 영국과 유럽을 오가는 유로스타 열차의 통행량 축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영국이 EU에 남아있었다면 국민총생산(GDP)이 4%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인들도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한다. 한 서베이에 따르면, 영국민의 확실한 과반은 EU 탈퇴가 잘못이었다고 믿는다.
또한 2/3는 EU 재가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원한다. 현 총리이자 브렉시트 지지자인 리시 수낙은 탈퇴의 정당성을 역설하지만 자신도 브렉시트가 만들어낸 일련의 위기에 직면해있다. 영국은 아직도 자국과 유럽연합 회원국인 아일랜드 사이의 국경 문제를 풀지 못했고, 이로 인해 경제성장은 더욱 타격을 입었다.
영국민에게 브렉시트는 무너져 내린 자신감의 일부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영국의 생산성은 가파르게 추락했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집권당인 토리당의 내핍 정책은 공공지출을 삭감하고, 불평등을 확대하며, 일반의 두려움을 고조시키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늘 그렇듯, 어려운 시기가 닥칠 때마다 기회주의적인 정치인들은 외국인들에게 책임을 돌리곤 하는데, 보리스 존슨이 그랬다. 그는 브렉시트가 영국이 앓고 있는 모든 질병을 치료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이에 따른 경비와 혜택에 관해 거짓말을 했다. 일단 브렉시트를 통해 족쇄를 풀고 나면, 거품을 빼고 생산성을 높인 ‘글로벌 브리튼’이 테임즈강의 싱가포르가 될 것이라던 존슨의 판타지는 물거품처럼 깨어졌다.
사실, 지금 영국은 사회복지 지출 확대, 중요산업분야에서의 연이은 파업과 임금 정체 심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존 번-머독 기자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평균적인 영국 가정은 내년 연말쯤에는 슬로베니아의 평균 가정보다 빈곤해진다.
브렉시트의 영향은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수년에 걸쳐, 필자는 마가렛 대처에서 데이빗 카메룬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국 총리와 대담을 나눴다. 이들 개개인의 정치 철학은 달랐지만 모두가 세계무대에서 영국이 담당해야할 역할에 대한 야심찬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영국이 미국과 중국 같은 초강대국의 반열에 서지 못할 것이라고 시인하면서도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활기찬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영국은 역내 3대 경제대국 가운데 하나로 유럽연합내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또한 유엔 안보리 거부권, 워싱턴과의 긴밀한 관계와 강력한 국방력 덕분에 특별한 지위를 누렸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에 연결 고리를 지닌 자유 무역주의 국가의 유산을 상속한 영국은 국제적인 이슈에 아이디어와 아젠다를 창출하는 오랜 전통을 지녔다. 한마디로 영국은 어느 곳에서나 신중하게 받아들여지는 묵직한 목소리를 가졌다.
그러나 지난 10년 사이에 국방비 지출은 제자리걸음을 했고, 외교예산과 해외지원예산, 심지어 BBC의 실질적인 기금마저 칼질을 당했다. 브렉시트와 함께 영국이 담당해야 할 더 큰 역할에 관한 논의가 실종됐고, 정치인들은 지나치게 글로벌한 듯 보이는 이슈로부터 도망쳤다. 최근 선출된 영국 총리들은 국제적인 매체와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고, 어쩌다 한다 해도 주목할 만한 발언을 내놓지 않는다. 영국은 유럽연안으로부터 고립된 중간크기의 섬나라로 자체적으로, 혹은 파트너십을 통해 아젠다를 제시할만한 중량감이 없다.
심지어 워싱턴도 EU 회원국이 아닌 국가에 시간을 거의 내주지 않는다. 언론인 닐 아스처슨이 한때 우려했듯 그레이트 브리튼은 리틀 잉글랜드로 전락했다.
영국의 성장을 회복하고, 국가적 야망을 확대하며 거대한 힘의 경쟁터인 신세계의 설계자라는 핵심 위치로 돌아갈 치료법은 분명 존재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 영국은 유럽연합에 복귀해야 한다.
리시 수낙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영국의 국운을 되살리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문제를 풀어낼 해법을 갖고 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 해법을 실행할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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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