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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의 시선] 낸시 펠로시, 투사에서 멘토로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3-01-25 13:12:12

칼럼,정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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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LA미주본사 논설실장)

지난 연말 연방의회는 데드라인을 하루 앞두고 1조 7,000억달러의 2023년 수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국방, 교육, 의료, 자연재해, 우크라이나 지원 등 수많은 분야의 예산이 포함된 이 거대 ‘옴니버스’ 법안은 민주 공화 양당의 오랜 힘겨루기로 진통을 겪다가 ‘셧다운’ 직전에서야 상하원의 가결수를 넘어섰다. 주류언론들은 이 예산안의 통과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또 다른 초당적 승리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옴니버스 타결의 주역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며, 그의 마지막 승리이자 업적이라고 보아야한다. 

2007년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House Speaker)으로 선출되어 미국 권력 서열 3위에 오른 낸시 펠로시(82)는 오랜 세월 하원 민주당의 리더이자 간판이고 투사이며 정신적 지주였다. 대체 불가한 정치적 수완과 특유의 카리스마, 중요한 의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단호한 리더십으로 연방의회를 장악하고 이끌었다.

2010년 험난했던 오바마케어(ACA·전국민건강보험법)부터 가장 최근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까지, 민주당 주도 법안을 노련한 솜씨로 통과시킨 그에 대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 의회의 역대 가장 훌륭한 하원의장 중 하나”라고 찬사를 보냈고, 바이든 대통령은 “그가 이끄는 한 나는 한 번도 법안통과 여부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찬성)표를 확보했다고 말하면 진짜였다. 매번 그랬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공화당의 보수파, 극우파,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었고 ‘사탄’이었다. 펠로시는 그녀를 ‘미친 낸시’로 부르던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싸움닭처럼 맞섰고, 두 차례에 걸쳐 트럼프에 대한 탄핵을 주도한 ‘트럼프 저격수’였다.  

펠로시는 원래 힐러리 클린턴이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면 은퇴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가 승리하자 은퇴 결정을 보류하고 민주당을 이끌며 트럼프 견제에 올인 했다. 2019년 1월 그가 두번째 하원의장에 출마했을 때 고령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트럼프의 일방독주를 막는 데는 펠로시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의견으로 다시 그의 손에 의사봉이 쥐어졌다. 

그리고 그 직후 맞붙은 트럼프와 펠로시의 대결은 펠로시의 완승으로 끝났다. 트럼프가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요구하며 끌어온 35일간의 최장기 연방정부 셧다운을 펠로시는 단 한푼의 예산도 내주지 않고 종료시킴으로써 트럼프를 납작하게 눌러버린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굴욕적이고 아픈 패배”라고 당시 언론들은 선언했다. 2020년 2월 트럼프의 국정연설 때는 펠로시 의장이 청한 악수를 트럼프가 외면하자 바로 뒤 의장석에서 연설문을 박박 찢어버리는 강렬한 퍼포먼스로 인터넷과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적도 있다. 

낸시 펠로시는 1940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볼티모어 시장과 연방하원의원을 지낸 부친을 보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트리니티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결혼하여 금융업에 종사하는 남편을 따라 샌프란시스코로 거처를 옮기면서 다섯 자녀의 육아 및 가사에 전념했다.

선거에 출마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자녀교육 때문에 미루다가 막내딸을 고등학교에 보내고 나서야 선거에 도전했다. 1987년 샌프란시스코 지역구의 연방하원의원 샐라 버튼이 사망하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늦깎이 정치인이었지만 타고난 언변과 협상력, 자금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당 중심부에 진입한 그는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와 민주당 대표를 거쳐 연방하원의장에 두 번이나 선출되는 기록을 남겼다.

트럼프도 무릎 꿇게 했던 천하의 펠로시가 이제 19선의 평의원으로 돌아왔다.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이 공화당에 넘어가자 “새로운 세대를 위한 시간이 왔다”며 연방 하원의장 직을 내려놓은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원내대표로 남아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조차 거절하고 20년 만에 민주당 지도부에서 물러났다. 

이 결정에는 작년 10월말 샌프란시스코의 자택에 큐어넌 신봉자가 침입해 남편 폴 펠로시를 둔기로 가격, 두개골과 팔에 골절상을 입힌 사건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워싱턴에 있던 펠로시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죄책감에 사로잡히면서 정치 인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주변에서는 전하고 있다. 

지난 12월14일, 의사당 로비에서는 민주 공화 양당의 동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펠로시 하원의장의 공식 초상화 제막식이 열렸다. 의사당 복도에 걸린 수십 명의 전 하원의장 초상화들 사이에 최초의 여성 초상화가 자리잡은 것이다. 적갈색 수트에 진주목걸이를 하고 손에 의사봉을 든 우아한 모습의 초상화는 화가 로널드 셔가 2014년에 완성, 그동안 따로 보관돼 있다가 이날 공개되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4인치 높이의 지미 추 스틸레토를 신고 의사당 건물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멋쟁이 할머니, 엄청난 자기관리로 젊은이들 못지않게 팔팔하고 꼿꼿한 낸시 펠로시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단한 권력을 가진 여성이었지요. 이제는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여성이 될 것입니다.”

펠로시 전 의장이 124명 여성 하원의원들의 멘토로서, 미국과 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의 롤모델로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정숙희의 시선] 낸시 펠로시, 투사에서 멘토로
정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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