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늘그막 우리 노부부는 이인 삼각 경주를 하고 있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가져다 준 행운이다. 허리와 무릎 통증에다 좌골 신경통까지 겹쳐 워커에 의지해서 걸어야만 겨우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던 노구를 우리집 할배가 부축해주기 시작하면서 남사스러운 손잡기도 이젠 필요불가분 부축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인 삼각 경주가 시작되었다
시대 흐름까지 도와주는 것 같다. 눈여겨 일삼아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시대가 얼마나 고마운지. 서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만나 낯설음에서 익숙함에 이르는 동안 유난한 시도나 사랑 놀음을 한 것도 아닌데 어느 결에 닮아가고 있었다. 그 긴 세월이 한 순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추동력이나 풋풋한 젊음, 불굴의 투지는 자취가 없어졌지만, 우리집 할배 특유의 유머와 강직한 부드러움, 거기에 노년의 중후함이 함께하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다. 가끔씩은 노년의 빈 공간이 아무 것도 없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해지는, 헛되고 보잘것없는 하찮고 구차한 존재감이 불러들인 허전 함에 쓸쓸하기 그지없는 허무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럴 땐 ‘시계보고 부채질을 하세요’ 호기롭게 웃어버리자고 한다. 노년으로 접어들었음이 영락없다.
서로의 만남이란 함께하는 동안 같은 속도로 같은 풍경을 읽어가는 것이었다. 주변이 필요로 하는 것에 보폭을 맞추는 것이 아닌 함께하는 필요에 의한 보폭을 맞춰가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었다. 함께 백발에 이르고 보니 둘이면서도 하나였다. 반쪽이 되면 미완성 인생이 되고 만다. 곁에 있음에도 잠시 눈에 띄이지 않으면 걱정이 모래바람처럼 일기 시작한다. 젊은 날의 찬란했던 꿈 속으로 데려다 준다 해도 다시는 되돌아서고 싶지 않다. 겹겹이 줄어들지 않는 기억들은 추억이란 선반 위에 고이 놓아두기로 했다. 살아온 노하우가 경쟁의 유력한 수단이 되어줄 것이요, 정보 전수가 되어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을 요령 삼을 수도 있겠지만 더는 욕심 없는 지금이 편안해서 사뭇 좋다.
내외의 정은 나이 깊어 갈수록 더욱 두터워 져서 늘그막 정이 제일이라 했나 보다. 세상 순리는 각자도생이다. 만물도 주기율이 저마다 다른 것이 자연스러운 리듬인 것이다. 오랜 여정을 수행하려면 알맞은 편안한 속도가 제격이다. 기차도 간이역이 있고 고속도로도 휴게소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유난하게 달리지도 말 것이며 지나친 느슨한 템포도 멀리하며 남은 날들을 고유의 리듬으로 나란히 함께하는 동행이라면 더 바랄게 무얼까 싶다. 함께 호흡을 고르며 보폭을 조율해가며 처연하게 거닐 듯 걸어가려 한다.
해변가에서의 첫 만남은 반세기를 훌쩍 넘겼지만 또렷한 영상으로 남겨져 있음이 신기하다. 짙은 해무가 나란히 앉은 옆 사람도 보이지 않을 만큼 이었는데 한사코 손 끝이라도 닿을까 운무에 잠겨있었다. 운무가 도와준다 한들 어찌 하리요였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얼레리골레리 손을 잡고 걷고 있는게 아닌가. 그러다 배웅하느라 함께 걷다가 되돌아 가는 길을 다시 또 함께 걸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핑계로 가족이 되어 버렸다. 마치 누군가가 시간을 훔쳐갔을까 싶을 만치 유수같은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엄마 아빠를 골고루 닮은 딸 넷을 얻어 오손도손 깨소금 놀이하다 민들레 홀씨가 되어 태평양 먼 바다를 건너왔다.
맏이부터 듬직한 제짝을 따라 하나 둘 떠나가고 빈 둥지가 되어 동그마니 둘만 남게 되었다. 지루할 때도 있었던 그 긴 세월이 찰나에 지나간 것 마냥 백발의 두 노인으로 남겨졌다. 넘어질 듯 더딘 할멈 손을 꼭 잡고 이인 삼각 경주를 이어가고 있다. 성경 잠언서 말씀에 ‘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 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며 사랑하는 딸들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았기에 얻어진 면류관으로 받아들인다. 나이든다는 것은 쇠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가장 효율적 방법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명징하게 위로가 되어준다. 이제 천상 노인이구나 싶다. 함께 기력이 쇠해지고, 보폭이 줄어들어도 느린 걸음으로 이인 삼각 경주를 꾸준히 이어갈 것이다. 서로를 안타깝게 여기는 연민은 동정심 유발을 부추기지만 어쩔 수 없이 애잔함이 번지는 본능을 어이 하랴. 해 저무는 해변에서 수평선이 노을에 물들어가듯, 그렇게 노을처럼 아늑하게 고요히 사위듯 저물어 가고 싶다. 이인 삼각으로 묶인 줄을 추스르며 저만치 보이는 결승점까지 넘어지지 않으며 당도할 수 있기를 기도드리며 할배랑 나란히 새롭듯 한 발을 내딛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