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원더풀(Wonderful)”이란 말은 “멋진 인생”을 격려하고 박수갈채를 보낼 때 쓰는 <인류공용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원어의 뜻은 “기묘자(奇妙者)”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성탄의 계절에 이 세상을 찾아오실 구원의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예언의 말씀으로 선포하신 중요한 <예수님의 닉네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름(Name)”의 의미 <그 이상>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에 온전히 집중한 “임마누엘 예수”와 일치하는 동의어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예수님의 이름,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영원한 동행자, 영원한 인도자, 영원한 구주>를 지칭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왜 “기묘자, 예수 그리스도”이신가?
첫째, 이사야가 선포한대로 그 탄생이 기묘(奇妙)하신 구주이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사람이 정상적으로 결혼함을 통해서 자녀가 탄생하고 이 평범한 과정을 통해서 가정이 구성되어지는데, 예수님은 이러한 상식적인 범주에서의 탄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으로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탄생하셨기에, 그 이름을 “기묘자(Wonderful)”라 부릅니다(마1:18-25).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속한 나라가 기묘(奇妙)하시기 때문입니다(사 9:6~7).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단순히 탄생 그 자체가 아니라, 태어나시기 전부터 “그 어깨에 정사를 매었”기 때문입니다(사 9:6). 즉,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사명과 특권을 몸소 지니고 탄생하셨기에 그 이름이“기묘자(奇妙者)”이십니다.
셋째, 기묘자 그 자체의 깊은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모세에게 일러주신 대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스스로 있는 자이신 자존자(自存者) 하나님은 모든 것, 즉,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 가운데 계셔서, 만유를 다스리시고 총괄하시는 “초월자 하나님”이심을 밝히셨습니다. 그래서, “기묘자(奇妙者)”란 뜻은 곧 하나님의 닉네임입니다. 세상에 오실 때,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실 분이시기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강조하신 말씀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마 6:33).
넷째, “기묘자(奇妙者),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대장부가 걸어간 길을 평범하게 걸어가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이 세상 범부들이 겪은 것과는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이 세상 사람들이 겪는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 바로 그것에 견줄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최후>를 스스로 맞이하셨다는 것이 기묘자의 이유입니다(마27:32-56; 막15:21-32; 눅23:26-43; 요19:17-27).
다섯째, “기묘자(奇妙者),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이 끝이 아니심을 우주 공간에 스스로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무릇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25-26).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후 세계를 예언하신 대로 예수님은 죽은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부활예수, 생명예수”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이 “기묘자(奇妙者)”의 이유입니다.
여섯째, “기묘자(奇妙者), 예수 그리스도”는 500여명의 갈릴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활하신 이후, 구름타고 천국으로 귀환하실 때 천사들이 외친 그대로, 다시 “재림(Recoming)”하실 것이기 때문에 “기묘자(奇妙者)”의 이유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사도행전 1장 6절~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