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쉼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송구영신 절기가 다가왔다. 한 해를 달려오느라 기진한 마음들 끼리 가쁜 숨결을 돌리며 가감없이 평안과 안식을, 느긋한 휴식과 치유, 재충전을 한가롭게 나누고 싶어진다. 임인년 한 해를 마치 긴 터널을 지루하게 건너 온 것 같아 새해를 여는 마음에 소망이 부푼다. 떠나 보낼 한 해라해서 각별한 아픔만 있었을까. 웃을 일도 있었을 터이고 남모르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인 것이 세상살이가 아니던가. 그나마 오늘들을 올곧게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은 몰두할 수 있었던 기쁨이 떠오르기 때문일 게다. 기쁨에 잠길 때가 올 것이란 기대감이 오늘을 있게 해준 에너지가 되어준 것에 대해서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작은 실천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관계 서적과 좋은 글들을 만날 수 있는 매스 미디어를 살펴보는 동안 줄곧 떠오르고 있었던 ‘그럴 수도 있지’ 가 마음에서 맴돌고 있었음을 알아채게 되었다. 실생활에 적용하기에는 비교적 힘겨운 편이라 ‘그럴 수도 있지’가 생각의 주변을 선회하고는 있었지만 성공적인 사례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 힘들어 할 때, 비난이나 위축되는 말은 응당 삼가하게 되지만 자신의 실수, 과실에는 관용보다 좌절하기 쉬운 자기 평가를 서슴 치 않게 되더라는 것이다. 고작 그것 밖에 안되냐며 미흡함을 지적하고 자책하게 되는 경우에라도 ‘그럴 수도 있지’ 한 마디면 실수를 쉽게 인정하게 되고 가책이나 죄책감까지도 내려놓기가 쉬울 수 있었을 터인데.
화를 쉽게 잘 내는 사람, 시간을 무시하듯 항상 늦게 나타나는 사람, 사람이 모이는 자리면 염치 불구 갑이 되려고 하는 사람, 눈치 없고, 인색하게 구는 사람도 더는 따지지 말자. 인생이 고단해진다. 나도 범할 수 있는 예견된 일이요 세상 만사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기에. 어차피 누구나 크고 작은 단점과 부족한 부분을 지니고 있기에 부족함이 드러날 때 비난 받기 보다 따뜻함으로 격려 받고, 응원 받고 싶은 마음 또한 동일한 것인데 이 또한 잊고 살아가기 십상이다. 서로에게 따뜻함을 내어주자. 나의 부족함도 그럴 수 있음이요 상대의 부족함도 그럴 수 있음이다. 또한 생김새나 외모를 두고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세상을 창조하신 그 분께서 인생들을 손수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지를 매사에 대입시킨 다면 스스로에게도 너그러워질 것이요 타인의 허물에 까지 관대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가 아름다운 습관으로 자리잡게 되면 상대적 감정 이입이 초래한 흔들림도 조절할 수 있게 되고 어떤 분위기에서도 정답고 포근하게 감응하게 될 뿐 아니라 생각이나 느낌을 언어로나 몸 짓으로 묘사하게되는 표현력에도 낯익게 되고 친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수도 있지’가 품고 있는 내재된 시현이요 묘출의 힘이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터인데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은 언제나 시끄럽고 고단하기 마련이다. 주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을 수치 인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지를 크고 작은 공동체 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접목하며 알맞게 반영해가며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의지를 다짐해 간다면 매사가 얽히거나 뒤틀리지 않음은 물론 복잡하게 꼬이는 일도 멀어질 것이다.
모름지기 서로에게 그럴 수도 있지가 부담없이 적용되어 간다면 세상은 한결 넉넉하고 따뜻해 질 것이 자명하다. 서로 그럴 수도 있지를 허용하며 너그럽게 용납하며 받아들인다면 아름다운 관계 형성도 한결 부드럽고 가볍게 흘러 갈 것인데. 작금의 세상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지구 반대편의 소식도 실시간에 알려지고 있는 시대인지라 세상 살이 분진이 쉼없이 지구를 덮고 우리네 일상을 덮고, 가정 요람에까지 덮이려는 참이라 가족 관계도 예외일 수 없음을 감안해야 함은 물론 직시 해야할 것이다.
창조주께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신 시간인데 값어치 있게 사용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함부로 써버리는 삶도 있다. 허송 세월을 한 후에 탄식하는 것 보다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을, 분초를 내 것으로 감당해내지 못한다면 미래라는 시간 조차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여야 할 송구영신 길목이다. 인생 시계 태엽은 단 한 차례만 감겨지는 것이라서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것이다. 시간 흐름에는 ‘그럴 수도 있지’가 결코 용납되지 않음을 명료하게 기억해 두어야할 일이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작은 실천들을 위해 따뜻한 메아리로 돌려보내는 일에 열중해 보자는 것이다. 세월 속도에 버금가는 보폭으로 이어갈 순 없지만 세월을 살아온 품격 만큼은 기품 있는 뒷모습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매일을 임인년 마지막 날이라는 개념으로 살아보자. 임인년이 떠나기 전에 함축성 있는 마침표를 찍으려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작은 실천들을 유용한 익숙함에 이르도록 해야할 것이다. 짜임새 있는 숙려와 모색으로 반짝이는 구상을 궁리해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