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모세(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가을이 깊어가는 푸른 숲의 풍경이 어느새 현란한 색채로 물들이고 있다.
숲 길목에 나와 풀을 뜯고 있는 갈색 무늬의 토끼 한 쌍은 인기척에 깡충깡충 뛰면서 숲속으로 사라진다.
늦은 오후 자신의 그림자를 앞세우고 숲길을 걷는 모습이 왜소하게 느껴진다.
세월의 흔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왜소함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는지?
얼마 전 땡볕 아래서 오랜 시간에 풀뿌리 뽑기 작업을 하면서 더위를 먹어 잠시 건강이 휘청했었다. 예전에는 쉽게 해치우던 작업이 이제는 점점 힘들어지는 때에 이른 것 같다.
몇 주 동안 몸을 추스르면서 이제는 나이에 걸맞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건강 상태나 한계성을 알고 무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 달 만에 맥 다니엘 팜 파크를 찾아 걷고 있다.
그동안 걷지 않아 다리의 힘이 풀려 내딛는 걸음이 느려져 보폭이 좁아졌다.
매일 걸으면서 다리에 힘을 올려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는 일념에 연약해지기 쉬운 자신을 다독이고 있다.
예전처럼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 걸음으로 보폭도 넓혀야겠다는 생각이다.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호흡이 불규칙하고 심장에 부담이 온다.
그동안 걷지 않아 나타나는 예민한 반응은 몸의 이상을 알리는 신호이지 싶다.
심장 박동(맥박)이 일정하지 않다는 생각에 보폭을 늦추면서 쉬엄쉬엄 걷고 있다.
이내 휴식을 취하면서 무엇이나 때가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3:1-2)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 3:8)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을 지니신 분이시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 사람이 스스로 앞날을 헤아릴 수 없음을 전도서 기자는 고백하고 있다.
지금 자신의 인생 계절에서 어느 때를 맞고 있는가? 삶에 대해 진지한 고찰이 필요한 때이다.
삶의 계절 가을은 어느 한순간에 서서히 찾아든다.
인생의 가을은 성숙한 삶을 살아내는 때이다. 이 가을에 내면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싶다.
노년의 멋을 추구하는 마음의 여유와 쾌활함과 항상 온화한 표정을 지녔으면 한다.
자신과의 내적 조화를 이루어 집착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시니어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정신적, 심리적 안정 못지않게 신체적 기능 장애나 고통을 극복하는데, 있지 싶다.
노년에 접어들어 신앙생활에 의해서 얻는 마음의 평화와 위로가 큰 힘이 되고 있다.
신앙의 힘은 어떠한 삶의 조건에서도 감사가 따르게 마련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사람은 죽음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죽음은 내 의지로 삶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니며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믿음의 과정이다. 노년에 죽음을 두려움 없이 맞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의 때를 맞는 순간을 담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사람에게 주어진 물리적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 한다.
카이로스(Kairos)는 영원한 신비의 시간이다.
죽음은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로 옮겨지는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크로노스에서는 단 한 번뿐인 삶을 살지만, 카이로스에서는 죽음은 영원한 삶이 시작되는 은혜의 시간이다.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조금은 겸손해질 수 있다.
조락의 계절 가을에서 어떻게 삶을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날마다 경이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먼저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가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이때를 선용하게 되리라.
노년은 삶의 참 의미를 재발견하는 때이며 “사랑하는 사람(가족)과 함께하는 삶의 가장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지미 카터)
노년은 삶의 가치를 재정립하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순간이 행복의 절정에 이르는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