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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아틀란타 소풍 보고서(2)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2-07-13 11:56:04

독자기고, 조광동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조광동(언론인)

 

전시장 박물관을 나와 격전지를 향해 걸었다. 숲 길을 오르는데 이미 격전지를 답사하고 내려 오던 틴에이저로 보이는 예쁜 백인 여성이 우리와 마주치자 한국식으로 고개와 허리를 약간 숙이며 미소 띤 얼굴로 인사했다. 나도 약간 고개를 숙이며 하이! 하고 답례했다. 저 젊은 틴에이저 여성은 분명 한국 드라마나 K 팝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일리노이 기념비가 있는 케너사 마운틴 격전지 언덕 길을 걸으면서 다큐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을 생각했다. 케너사 마운틴 격전지는 백 수십년전 전쟁 당시 모습을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전쟁터로 가는 황토길은 울창한 숲 속에 드문 드문 가꾸지 않거나 제멋대로 자란 잔디와 잡초들이 흩어져 있다. 군데 군데 당시 남군과 북군이 구축했던 방어 진지가 있고 거기에 대포가 있다. 이 진지는 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거창한 참호가 아니라 얕으막하게 둘러진 흙 더미였다.

진지 근처에 주둔했던 부대 이름을 적은 푯말이 보인다. 북군의 UNION 3RD. BRIG. HARKER 2ND DIV. NEWTON IV CORPS HOWARD 표지판이 있고 남군의 CONFEDERATE VAUGHAN’S BRIG. CHEATHAM’S DIV. HARDEE’S CORPS 푯말도 있다. 대포가 서 있는 CONFEDERATE MEBANE’S TENN BATTERY란 푯말이 세워진 진지 한 귀퉁이에 작은 보라꽃이 주저 앉은 듯 피어있다.

숲길을 한참 걸어서 일리노이 기념비가 있는 곳에 이르니 기념비 앞이 절벽처럼 깎아져 내리고 그 아래에 평평한 운동장이 있고 그 주위를 나무들이 둘러서 있다. 문외한의 눈에도 지형이 특이했다. 일리노이 기념비는 케니소 전투에서 희생된 일리노이주와 인디아나 주의 북군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일리노이주는 지금 내가 사는 곳이고 전쟁 당시는 아틀란타 남군의 적군이었다. 남부의 땅에 있는 북군 추모 기념비다. 밤낮으로 전개된 6일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희생된 480명의 사상자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일리노이 기념비는 케너사 전투에서도 가장 혈투를 전개했던 곳의 하나로 꼽히는 “데드 앵글(Dead Angle)” 전투를 전개했던 곳에 서 있다. 이 격전지를 “죽음의 각도”라고 부르는 것은 피를 많이 흘렸던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지를 구축한 위치가 적군의 진지 위에서 보이지 않는 절묘한 위장 지대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금 전에 관람했던 다큐 영화 장면이 떠 오른다. 격전이 끝난뒤, 그때가 6월 27일 무더운 아틀란타 여름이라 북군들의 시체 썩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남부군이 먼저 일시 휴전을 제의하고 남군과 북군은 악수를 나누고 썩어가는 시체들을 흙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휴전하는 동안 남군과 북군은 함께 카드 놀이를 하면서 친구처럼 지냈다. 전쟁이 서로를 적군으로 만들었지 인간으론 친구였다. 휴전이 끝난 뒤 남군은 예상을 뒤엎고 대치 지역에서 퇴각했다.

오늘이 6월 20일이니 160년 전, 오늘 처럼 더운 6월의 아틀란타 케너사 마운틴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자기들이 신봉하는 유니언 깃발과 컨퍼데리트 깃발을 휘날리며 죽어갔다. 어디에 사느냐가 인간의 운명을 가른다.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사는 시스템의 이치고 보면 사는 곳의 땅이 명령하면 누군들 거역할 수 있겠는가. 자기가 사는 땅의 부름을 받고 생명을 바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세월의 황토에 젖어들고 바람결에 스쳐간 수많은 젊은 영혼들의 애가는 아직도 케너사 마운틴에 남아서 나그네의 가슴을 숙연케한다.

케너사 마운틴을 내려와 짜장면 집으로 이동했다. 밴이 이동할 때면 내 자리는 맨 뒷좌석 맨 왼쪽이다. 운전석 바로 뒤 첫줄에 김승웅 방장과 신복룡 교수가 앉고 둘째 줄에 신우재 선배와 홍경삼 선생이 타고, 셋째 줄에 나와 천양곡 선생과 양종석 총무가 앉는다. 여성들이 타는 작은 밴에 탑승했던 김명희 선생이 오늘은 남성들이 타는 큰 밴으로 옮겼다. 둘째 줄, 홍경삼 선생 옆에 앉았다. 좌석이 두 사람이 앉는 것이나 넉넉한 2인 좌석이라 세 사람이 앉을만 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김명희 선생에게 대뜸 “남북전쟁은 피할 수 없었을까요?”하고 물었다. 링컨 책을 쓴 김명희 선생의 대답은 간결하고 분명했다. 물론 피할 수 없었다였다. “노예 폐지를 점진적으로 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김명희 선생은 역시 불가능했다고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대부분 역사가들이 그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대한 회의는 멈추질 않는다. 북군 가운데 흑인 노예를 해방시키려는 인간 평등과 정의감으로 목숨을 던진 사람이 얼마나 되고 남군 가운데 노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인간 본능은 선택이 있을 때 쉽게 목숨을 걸지 않는다.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목숨을 걸었다.

다시 케너사 전쟁기념관에서 본 다큐 영화 장면이 지나간다. 산촌 마을에 노예 없이 빈한하게 사는 아틀란타 백인 여성이 북군이 쳐들어 오자 아이들을 마차에 태우고 황급히 피난길을 떠난다. 남편은 전쟁터로 갔을 것이다. 북군이 들어와 빈집의 옷을 약탈하고 닭을 잡으려 쫓는다. 전쟁은 잃을 것이 많은 힘있는 사람들과 얻을 것이 많은 힘 있는 사람들의 땅따먹기 인지도 모른다. 그 땅에 사는 사람은 권력이 부르면 전쟁터로 가야 하고, 가족은 피난을 떠나야 한다.

노예 해방을 위해 남군, 북군 70만명이 죽었다. 당시 미국 인구의 2%에 해당하는 숫자다. 지금의 인구 비율로 보면 6백만명이다. 여기에 부상자 50만명, 민간인 사망자 5만명, 포로 수십만명을 합하면 전쟁의 여파가 어떠했을지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 많은 피를 흘리면서 노예 해방이 된지 160년이 되었으나 흑인 문제는 여전히 미국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왕서방 중국집에서 쟁반 짜장면을 든 다음 저녁에 있을 포럼을 위해 호텔로 돌아왔다. 한인사회 포럼이 오후 6시 부터로 계획된줄 알았으나 일정이 4시 30분으로 앞당겨졌다. 호텔에 돌아와 양복으로 갈아 입고 잠시 쉬면서 발표를 준비했다.

오후 4시 쯤 호텔을 떠나 포럼 장소인 노크로스(Norcross)에 있는 아틀란타 한인회관으로 갔다. 문화회관(Korean American Community Center)이라고 쓴 간판이 보였다. 아틀란타 한인회관은 크기가 대단했다. 미주한인사회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이렇게 큰 건물을 어떻게 유지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간 일행에게 건물이 크다는 말을 했더니 누군가가 “건물이 커서 한달에 10만불이 적자랍니다”라고 말했다. “10만불은 너무 많은데요. 10만불이 아니라 만불이겠지요” 했더니, “그런가?”하면서 웃었다. 한달 적자가 만불이라도 큰 돈이다.

이 건물의 앞날도 어떤 획기적인 방책이 강구되질 않으면 순탄치 않을 것 같다. 지금이야 한인이 늘고 번창해서 큰 건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이민이 더 이상 오질 않는 현실에서 이 건물을 누가 사용하고 누가 관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한인들은 건물에 대한 욕심이 많다. 크고 번듯한 걸 좋아한다. 소프트 웨어 투자에는 소극적이고 하드 웨어 투자에 집착한다. 미래를 생각지 않고 당장의 과시만 생각한다.

시카고도 그렇고 큰 도시 한인사회는 단체나 교회가 건물을 사놓고 유지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민 세대는 늙어가고 세상을 떠나는데 젊은 세대는 한인사회나 한인교회에 관심이 없다. 늙이들만 앉아서 건물을 지키고 있다. 이들 세대가 떠나면 건물은 공중에 뜰 것이다. 건물을 살 때는 거창한 축하 파티를 하지만 그건 잠깐이다.

포럼 장소 안으로 들어가니 디귿자 모형의 포럼 테이블에 흰 커버를 씌운 의자가 스무 개쯤 놓여있고 헤드 테이블 앞 현수막에 "한인 이민사회 백년 대계 포럼"이라고 쓰여있다. 역시 흰 천을 씌운 청중석 의자가 50개 쯤 되어 보인다.

그저께 저녁 영웅상 시상식에서 영어로 사회를 했던 김인구 아틀란타한인방송 토크 쇼 진행자가 오늘도 사회를 맡았다. 박선근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샘 올렌스 전 조지아주 법부 장관이 기조 연설을 했다. 유대인 샘 올렌스 장관은 유대인 커뮤니티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한인 교회나 단체는 한인 울타리를 넘어서서 다른 인종이나 커뮤니티와 협조하고 그 속으로 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러한 협조와 참여를 할 때 한인들은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기조 연설이 끝난 뒤 패널리스트들이 돌아가면서 5분간 발표를 했다. 패널에 참가한 사람은 글방 회원 9명, 아틀란타 한인사회 지도 7명 등 모두 17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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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 회원들의 발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종석: 이민자 문제 관심 갖는 계기 됐다

저는 포럼에 참여한 패널이 아니었으나 사회자로부터 갑자기 지명을 받고 다소 당혹스럽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직업 공무원으로 33년 간 봉직하고 퇴직한 저는 재외 동포들의 절실한 바람과 희망 등에 관하여 제대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해외 동포의 애환을 접할 수 있었던 기회는 2014년에 독일 교포이신 이효정 총재가 "세계한인여성협회(UWKW: United World Korean Woman) "를 한국에서 창설할 때 창립 총회에 참석한 뒤, 매년 정기적으로 한국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세계한인 글로벌 네트워크 구성과 모국으로 돌아오는 세계한인여성들의 창구인 세계한인여성회관건립 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였습니다. 이민 2, 3세들을 위한 한국 내에서의 끈(일명, 친청 만들기)을 만들어 모국 방문시 소외되지 않고 한국인으로서 당당한 대접을 받도록 하기 위함 임을 알았습니다. 

해외 동포들은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따라 그들만이 설정하고 추진하는 목적과 목표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면서, 부족하지만 오늘 애틀랜타에서 개최되는 "한인 이민사회 백년대계 포럼"에 참석하는 계기로 더욱 해외 동포의 애환과 이민자로서 극복하여야 할 여러가지의 문제점 등을 듣고 공부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홍경삼: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했다

저는 47년 간 미국에 살았지만 아직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집 거실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습니다. 저는 영주권자로 살고 있지만 시민권자가 누리는 각종 혜택을 동등하게 받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대학 송년회 때 영사관에서 6.25 참전용사 기념비 모금운동을 시작한다기에 제가 동창회 이사장으로 있어서 회장과 상의해 1천불을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5백불을 추가로 기부하자 이 운동을 주도한 참전 용사가 이렇게 돕는 것에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해서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달 전인가 토요일 등산을 하려고 나가니 한인봉사회에서 아시안 증오 범죄 예방을 위해 경보기를 주었습니다. 아시안 증오 범죄는 인종 차별을 받은 흑인들이 백인들에 대한 분풀이로 방어 능력이 약한 아시안 여성이나 노인을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보호 장치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미국에 살지만 한국 대통령 선거 땐 투표에 참가하고, 샐러드보다는 김치를 좋아하고, 나이 든 분을 만나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합니다. 미국 법에 따라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모든 법을 따라야 하지만 내면의 우리 버릇, 습성, 외모는 바꿀 수 없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이란 존재를 잊지않고 살려고 합니다.

 

제임스 박: 50년 미국 생활

저는 제가 살아 온 50년의 미국 생활에서 있었던 몇가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50년을 초반기, 중반기, 종반기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민 초반기에 이웃집 할머니 시장 바구니 들어 드리는 친절과 테니스 선수 친구를 칭찬하면서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친절과 칭찬에는 보답이 따릅니다. 여러분도 친절과 칭찬을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봉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집 앞마당 쓸기, 거리 청소, 낙서 지우기, 시에서 주관하는 행사 참가 등 쉬운 일부터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중반기는 공부하는 시기였습니다. 저는 버지니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박사 학위를 받고, 와인 만드는 소믈리에가 되고, 커피 만드는 바리스타 시험에도 합격했습니다. 새로운 일을 배우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 사람들이 미국을 살아가는 자산이 됩니다.

이민 종반의 전반기는 참가하고 즐겼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시청에서 주관하는 이웃돕기 모금행사, 소방서에서 주관하는 팬케이크 펀드레이징, 경찰서 오픈 하우스 등, 참가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참가를 통해 시 의정에 참가하는 커미셔너를 3년 간 하기도 했습니다.

이민 종반의 후반기는 여행과 긍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삽니다. 저는 미국 50개 주와 세계 80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은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좋은 벗을 사귈 수 있고 미국과 세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천양곡: 심리적 정체성

이민자 특히 이민 1.5세, 2세들에게는 정체성이 중요합니다. 정체성은 한마디로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가라는 명제입니다. 정체성은 신체적 표현인 생물학적 정체성과, 물질적 소유와 사회적 지위를 뜻하는 사회적 정체성, 내면의 변화를 뜻하는 심리적 정체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단 형성된 정체성은 대부분 일생동안 그대로 유지됩니다.

정체성은 삶의 주기와 함께 발달합니다. 삶의 여러 시기를 거치면서 생물학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을 받아 심리적 정체성이 형성 됩니다. 심리적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어머니의 양육을 받으면서 자신감과 자부심을 형성한 뒤 아버지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아버지와 경쟁 관계에서 아버지처럼 되려는 동일화 과정으로 옮겨가는 타협을 합니다.

사춘기가 되면 독립과 의존 사이에서 방황하고 이 과정에서 후퇴냐 전진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힘든 시기를 넘어야 심리정 정체성의 발달이 거의 끝납니다. 그 뒤의 삶의 시기는 심리적 정체성 발달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민 1세, 1.5세, 2세들의 관심사는 서로 다릅니다. 1세는 가족 부양과 자녀 교육에, 1.5세, 2세는 인종적 문화적 차이로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합니다. 어떻게든 집단의 고립과 소외감에서 벗어 나려고 애씁니다. 부모 세대는 아이들을 돌볼 시간적, 정서적 여유가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부모를 거울 삼아 정체성을 찾아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한계의 덫에 걸린 유한함의 숙명을 지닌 존재입니다. 거대하고 무한한 우주를 창조한 초월자나 신의 존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자녀들에 마련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공한 자녀에게는 오만하지 않는 겸손한 태도, 낙제한 자녀에게는 위안과 재기의 힘을 길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 세대와 동포 사회는 자녀들이 튼튼한 정체성을 가지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류사회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 가도록 자율성과 창의성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는 다재다능한 자녀들로 키워야겠습니다. 동포 지역사회를 너머 지구촌 전체에 이익을 주는 기둥들이 되게 키워야 합니다. 내가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는가란 물음의 답은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나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한 마음과 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시는 이민자들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승웅: 지도 게임

저는 수년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직을 맡았을 때 심심풀이로 지도 게임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세계 지도에서 날짜 변경선을 축으로 서울의 대칭점을 접으면 신기하게도 그 대칭점이 로스앤젤레스가 됩니다. LA는 우리 미국 이민사의 상징적 거점이 아닙니까?

또 압록강과 두만강을 축으로 한반도를 뒤집어 보면 길림성과 요령성, 흑룡성에 이르는 지역이 나옵니다. 중국 동포 230만명 가운데 80%가 이곳 동북 3성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게임을 할 때마다 한국인의 미국 이민이 왠지 예사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어떤 숙명에 따라 치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민 간 사람들은 미국에 정착하면 미국 시민으로 살지만 한국에서는 출가한 딸을 보는 심정입니다. 동포를 바라보는 서울의 시각은 그만큼 다양하고 성숙해졌습니다.

출가한 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여기에 외국의 이민학 원리까지 접목시켜 가능한 한 포괄적으로 보고 싶어합니다. 해외 이민을 쳐다보는 이곳 서울의 몇몇 이민학 원리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로 동결현상(Frozen Phenomenon)이 있습니다. 동결 현상은 해외 동포들이 조국을 떠날 때의 머리와 발상을 그대로 갖고 있는 현상입니다. 조국도 변했고, 조국을 보는 거주국의 시각도 변했지만 동포들만 조국을 떠날 당시의 생각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시계추 원리(Pendulum Theory)로 동포 1세와 2세, 3세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그것이 마치 시계추와 같이 좌우로 진동한다는 것입니다. 이민 1세는 조국 지향인 데 반해 2세는 타국에서 고생하는 것이 부모가 이주했기 때문이라 여겨 부모와 정반대입니다. 3세가 되면 다시 1세와 같은 방향이 됩니다.

세 번째는 적응곡선 이론입니다. 이민자들은 대개 3년의 어려운 과정을 겪어 최저치에 이른 후, 다시 상승 곡선으로 전환하는데 7년이 걸리고, 그리고 나서야 안정기에 이른다는 논리입니다.

 

신복룡: 반일 정책의 유탄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앞에 서서 차를 기다릴 때면 마음이 착잡합니다. 슬라이딩 도어에 인쇄된 이봉창 열사의 글 마지막 구절에 “왜놈을 도륙하자”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시가 여기에 붙어 있는 것은 안국동 일대가 독립운동 거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놈 대사관이 그 곳에 있어서 대사관에 가려면 안국역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에 그곳이 독립운동 거리라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를 돌아 보면 일본의 집요한 정한(征韓) 전략과는 달리 한국의 대응은 그리 절박하지도 전략적이지도 않았습니다. 합방 이전이나 이후를 가리지 않고 지배 계급의 전략 부재로 한국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일본에 길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친일을 저지르면서도 그게 친일인지도 모른 채 친일에 익숙해지고 있었습니다.

이완용 장례식 만장 행렬이 10리를 이루었고, 안중근 의사가 사형 언도를 받을 무렵 한국인들은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 제작을 추진하면서 그를 활불(活佛)로 추앙하고 그를 추모하는 절을 장충단에 지어 박문사라 했습니다.

일본과 운동 경기를 할 때 텔레비전 화면에 욱일승천기 장면이 나오지만 미디아에서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언제 부터인가 중국으로 부터 수입해 온 “따오기 복원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따오기 노래의 핵심어는 동쪽의 해돋는 나라 일본을 그리워 하며 처량하게 부른 노래입니다. 따오기는 일본의 국조(國鳥)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입으로 친일청산을 외치면서도 실상 친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알게 모르게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고 망국의 책임자입니다. 지금의 친일 논쟁은 “먼저 태어난자의 슬픔과 늦게 태어난 자의 행운”이 빚은 갈등입니다. 친일(pro-Jap)은 먹고 살다 보니 저지른 일(pro-Job)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가진자들 가운데 구한말 부터 일제시대와 해방 정국에 이르기까지 100년의 역사를 살아 온 조상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갈 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을 집안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한일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념이나 노선이 다른 전 정권에서 약속했다고 해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논리는 하책입니다. 일본 우익들은 “저것도 나라냐”고 묻고 있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지한파 지식인들 마저 이탈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나 앞으로의 역사에서 한국은 중국 보다는 일본과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미국에 와서 친일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이제는 반일이 반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미관계에 불똥이 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Korean-hate-crime in Japan 이라는 용어가 걱정스럽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신우재: 재미동포사회의 미래 비젼을 위한 생각

신우재 발표자는 포럼에 참석하기 전 “재미동포사회의 미래 비젼을 위한 몇가지 생각”이란 글을 통해 몇가지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제기했다:

저는 재미동포사회의 미래 비전에 깊이 생각해 볼 계기가 없었고 경험도 없기 때문에 구체적 비전 제시 보다는 함께 의논할 몇가지 문제를 제기하려고 합니다.

코비드 19 팬데믹을 계기로 미국에서 증가하고 있는 아시안에 대한 혐오와 반감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신 냉전시대가 전개되면서 사태는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지탄의 손가락이 중국과 중국인이지만 재미 한인공동체도 그 피해를 피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재미동포 사회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요?

또 하나의 상황은 재미동포사회의 세대 교체입니다. 동포사회 주력 세대들이 2세대를 넘어 3세대로 바톤을 넘겨주고 있습니다. 세대가 내려 갈수록 사고 방식도 가치관도 다를 것입니다. 이들이 미래 동포사회의 주역이기에 현재 동포사회 지도자들은 이들을 주목하고 이들을 중심에 놓고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미래 비전을 마련해야 되지 않을까요?

셋째는 최근 두드러지게 드러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의 변화입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서가는 민주주의 나라이고, 첨단 하이테크에서 재래 산업까지 고루 갖춘 산업 대국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중 문화, 식품, 횃션, 디지탈 사회, 대중 교통 등 여러 분야에서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미동포 사회 발전을 위해 모국의 국제적 위상과 소프트 파워를 활동하고,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여 재미동포사회의 백년대계를 업데이트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날 포럼에서 신우재 발표자는 위에서 거론한 문제를 토론하는 대신 이러한 문제 제기를 전제로 다음과 같은 요지로 말했다:

오래전 종친인 워싱턴주 상원의원을 지낸 신호범 의원을 시애틀에서 만나 며칠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재미동포, 특히 젊은 세대의 정계진출을 적극 권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정치를 해야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큰 일을 할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저는 신호범 의원의 말대로 재미동포 젊은 세대가 미국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기대합니다. 2세, 3세들의 정치 참여를 위해 동포사회가 정치 역량과 리더십을 길러주는 조직과 네트웍을 마련해 주는 방법을 모색하길 바랍니다.

한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 삼성을 먼저 찾고, 현대총수를 시간을 내어 따로 만날 정도로 한국은 경제적으로 기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미국의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여러나라들도 한국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적극적입니다. 재미동포사회의 인재들을 이러한 새로운 트렌드에 부응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로 육성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영어와 한국어가 다 능숙한 인재는 쓸모가 많을 것입니다. 

 

김명희: 미국 사회 참여

저는 미국의 크고 작은 그룹 활동이나 문화 행사에 참석하면 이런 활동을 후원하고 도네이션한 사람들 이름을 눈여겨 봅니다. 하지만 한국인 이름을 찾기 어렵습니다. 한국인 중에는 돈을 많이 번 사람도 많고 한국의 위상도 높아졌으나 미국 사회에 참여하고 도네에션 하는 것에 약하고 관심이 적습니다. 한국인과 달리 일본인은 일본 문화를 알리고 연구하는 일에 많이 지원하고 활동합니다.

저는 한인 교회에만 출석하고 한인 컴뮤니티 활동에는 잘 참여하질 않아서 한인사회 실상을 잘 모릅니다. 저는 미국 사회의 여성 활동이나 박물관, 문화 활동 모임에 참석하고 작은 액수지만 도네이션을 합니다. 이것이 제 능력 한도 내에서 한국을 위해 기여하고, 한국인의 이미지를 높이고 지역 사회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인들의 시 클럽에 참여하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시집을 출판할 때 여러 사람이 도네이션을 해서 협력합니다. 저도 이런 모금에 참여했더니 뜻밖에도 제가 시집을 낼 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상 시집을 번역해 출판할 때 예상 밖의 많은 사람들이 도와서 출판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아서 놀란적이 있습니다.

개인은 개인대로 크고 작은 미국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능력이 많거나 큰 단체는 능력에 따라 미국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 대사관은 대사관 내에 미국 사회에 참여하는 특별 부서를 만들어서 문화 로비와 문화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활동과 도네이션에 참여하는 것이 한국인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고 미국 사회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참여하고 도네이션하고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이 미국 사회의 다양한 활동과 그룹에 참여하면 미국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개념이 달라집니다. 미국 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도네이션하는 것이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한국인의 이미지를 높이고, 미국 사회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조광동: 우리가 남길 유산

미국에 사는 코리안은 성공한 이민자로 평가 받고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존경 받는 민족은 되질 못했습니다. 존경 받고 사랑 받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과 열정과 능력을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좋은 이웃되기운동은 그동안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을 창설한 분이나 여기에 헌신한 분들이 나이가 들면서 젊은 세대에게 넘겨줘야 할 시점에 왔습니다. 젊은 세대가 이 운동을 물려 받으면 이 운동의 성격과 방향에 변화가 와야 합니다.

지금까지 좋은 이웃되기 운동은 한국 이민자가 미국의 좋은 시민, 좋은 이웃이 되는 일에 역점을 두었으나 새로운 세대의 운동은 한국인만이 아니라 모든 미국인이 더 좋은 미국인이 되고, 더 좋은 미국을 만드는데 역점을 둬야할 것입니다. 특별히 젊은이들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그 중에서도 소외되고 낙오된 계층의 자녀들에게 희망과 꿈과 용기를 주는 일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들이 장래에 좋은 미국 시민이 될 때 미국은 더욱 건강하고 희망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진 가난과 고난, 시련과 역경 속에서 응축된 열정과 열망의 DNA를 가진 민족입니다. 이 응축된 열정과 열망이 폭발해서 우리의 모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한류를 이루고, 반도체의 신화를 쓰고, 미국에 사는 코리안은 성공한 이민자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이 여기서 끝난다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성공한 이민자는 될 수 있어도 존경 받는 민족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변화시키는 꿈을 코리안 공동체의 비전으로 받아들이고, 미국의 정신과 의식, 문화와 역사를 더욱 건강하고, 더 희망적이고, 더 아름답게 바꾸는 것을 코리안 아메리칸의 소명으로 받아들여서, 여기에 코리안의 열정과 열망을 폭발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위대한 이민자의 신화를 쓰게될 것입니다.

우리는 숫자적으로나 양적으로는 미국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질적으로, 내면적으로 미국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수지만 남다른 민족입니다. 우리 모국이 한강의 기적과 한류와 반도체 신화를 이룩한 것처럼 코리안 아메리칸은 미국을 변화시키고 미국에 공헌하는 시민운동의 신화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변화시키는 시민운동의 신화를 성취할 때 우리는 미국에서 빛나는 역사를 쓴 빛나는 민족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 받고 존경 받는 자랑스러운 코리안이 될 것입니다.

 

나는 포럼에 참가하면서 내가 해야할 말에 대해 곤혹스러웠다. 포럼에 참가하기 전 나는 꽤 긴 글을 미리 보냈지만 한인사회에 대한 기대나 희망은 체념한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한인사회 미래는 이미 우리들 세대의 손에서 떠났고 다음 세대로 간 것이다. 박선근 회장의 열정과 열망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서 참가는 하지만 한인 사회 미래에 소극적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인사회를 위해서 많은 말과 글을 쏟아 냈으나 그것은 지난 시절의 것들이 되었다. 이민 1세들은 너나 할 것없이 생존에 허덕였고 생존이 해결되고 안정 되고 성공을 해도 이민사회 공동의 장래나 2세들 공동의 미래에는 관심이 적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아들 딸이 좋은 학교 진학하고, 좋은 직장 취직하고, 돈 잘 벌면 만족하는 풍조였다. 이런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닌데도 나는 이런 문화가 썩 마음에 들질 않았다. 이런 풍조를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없지만 우리의 실상이 그랬다.

우리는 똑똑하고 우수한 민족이지만 우리 의식 문화에는 봉사나 헌신이나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다. 문화 성격과 풍조가 이기적이다. 우리는 백년을 설계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투자하고 추진하는 문화에 약하다. 말로는 그렇게 하지만 행동이 따르질 않는다. 행동이 없으니 그런 비전과 꿈은 죽은 것들이 되었다. 내 미국 생활은 이런 시대와 사람들과의 갈등과 불화였다.

내가 박선근 회장에게 힘이 되고 싶은 것은 그와 같은 사람이 한인사회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인사회 지도자라는 사람들 거의가 한국에 기웃거리거나 한국 지향적이고, 동포들 대부분이 미국 문제 보다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 박선근 회장은 한국에서 건너 온 다리를 불태우고 미국 사회로 가는 새로운 가교를 건설하자고 주창했다. 그는 몹시 외롭게 한인들이 미국 시민이 되는 길을 외쳤다.

박선근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미국에 이민 온 사람은 모국을 과거로 묻어 버리고 미국을 내 나라라고 정하고 거기에 충성해야 한다는 확고한 미국 시민 의식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려는 그의 적극성과 열정은 대부분의 이민 1세가 미국의 변경에서 변두리 시민으로 살 때 박선근 회장을 미국 주류의 일원이 되게하고 미국의 주인으로 살게했다.

나는 코리안 이민사회에 대한 꿈을 포기했으나 박선근 회장은 포기하질 않는다. 포럼에 참석하면서 이런 심정을 말할 순 없었다. 나는 포기했더라도 비전을 가진 사람을 격려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고 예의다. 나는 내 발표를 격려 쪽에, 코리안이 시민운동의 신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에 역점을 두었다. 하지만 발표를 한 심정이 허전하다. 수십년 간 그랬다. 한인사회라는 허공에 소리지르는 심정이다.

포럼에서 발표한 마음이 허한 탓인지 맥주를 한잔 마시고 싶었다. 기분 같아선 맥주집을 가고 싶었으나 모두들 노래방을 가고 싶어했다. 나는 흔쾌하진 않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갔다.  모두들 즐겁고 흥에 겨웠다. 내가 노래방 가기를 머뭇거리는 것은 돌아가면서 의무적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못 부르는 나로선 아주 고역이다. 부를 사람만 불렀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여기서도 획일적이다. 사진을 찍을 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화이팅을 외치게 하는 사진 기자와 똑같은 집단적 강요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주먹을 쥐고 포즈를 취하라고 해도 하질 않는다. 그런 획일적 집단 문화가 싫다.  

아주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코리안은 가무에 출중한 민족이다. 모두들 노래를 잘한다. 흥에 겹고 신명이 많은 민족이다. 나만 노래에 젬병인 것이 아니라 아내도 통 노래를 못 부른다. 자기 차례가 와도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어려서 노래를 잘 불렀다고 자랑하고, 교회 성가대에 참여하고, 노래를 좋아하는데도 도무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떨려서 못 한다고 한다. 나보고 대신 시를 읊으라고 한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지만 할 수 없이 박두진의 시 고향을 암송했다. 분위기도 그렇고 감정도 그렇고 시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선택이 없었다.

박선근 선생님은 한국에 가서는 노래방에 가 봤지만 아틀란타서는 노래방에 처음 왔다고 한다. 노래를 잘한다. 모두들 잘 하지만 그중에서 신복룡 교수님과 김명희 선생님 노래에 감정이 철철 넘친다. 노래도 그렇고 제스츄어도 그렇고 대단하다. 신 교수님은 온 몸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김명희 선생님은 오른 손으로 치맛자락을 잡을락 말락 하면서 고음의 소프라노 음색으로 좌중을 휘어 잡았다. 김승웅 형의 조카 제임스 박 박사는 어려서 미국을 왔다는데 템버린을 들고 차차차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모두들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래 부르고 박수치고 웃음판을 벌이면서 아틀란타 여름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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