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인생의 유라굴로>는 바울이 선교여정에서 만난 <자연의 돌풍>, <인생의 돌풍>을 의미하는 인생여정의 강력한 <인생 경험담>입니다. <유라굴로>는 헬라어, “유로크루돈”에서 나온 파생어로 그 뜻은 <동풍>을 가르키는 “유로스”와 <북풍>을 가르키는 “아킬로”라는 두 단어가 결합해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즉 <동북풍의 거센 돌풍>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바울의 현주소는 비록 <로마의 황제 시이저>에게 잡혀가는 죄수의 몸이지만,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큰 그림>으로 보면, <복음의 세계화>를 이루는 바울의 최종 선교적 사명완수를 위한 <멋진 필그림, 천로역정>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하는 배 안의 사람들 275인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붙여주심으로 <생명구원의 밧줄>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사명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욥기서에 보면 인생의 필연적 고난의 운명에 대하여 “사람은 고생(고난)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영적 혜안으로 바라볼 때, “미항(Fair Heavens)”의 항구에서 월동을 해야만이 오직 바람에만 의존하는 <범선, 알렉산드리아호>는 바울을 포함한 276인의 승객들이 안전하게 <최종 목적지 이태리>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 한 눈에 훤히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무시한 미련한 사람들>은 바울의 영적인 혜안보다는 <인간의 경험과 경륜만 믿고 상식>으로 밀어부치는 <선주>와 <선장>의 말을 더 존중함으로써 그들이 맞이하지 않아도 될 <돌풍, 유라굴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거대한 배, 알렉산드리아호>는 파선이 되고, 그들은 <천신만고의 고난>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행 27:13~44).
잠언 22:3에 보면, 이 <인생의 유라굴로>를 만나게 된 사람들을 조명할 수 있는 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인생의 유라굴로>를 <불가피한 고난>에 비유하자면, 이 불가피한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유약한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바울이 <알렉산드리아호>의 배에 함께 승선한 275명의 <운명공동체>와 같은 사람들의 생명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은 크게 두 가지로 계시하십니다. 행 27:23~24에서 바울은 <천사>를 만나게 되고, 그 <천사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이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의 음성이 뜻하는 바는 <첫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둘째는, 하나님은 성령의 계시로 허락하시는 “언약”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처음으로 맞이한 <유라굴로>는 자연적 역경임과 동시에 인생의 역경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욥의 말처럼, 불씨가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고난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유라굴로>를 헤쳐나감에 있어서 바울처럼 <사랑의 하나님>, <성령이 계시로 소통하시는 하나님>을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사람의 연약한 힘과 지혜는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동북풍, 유라굴로>의 인생역경을 인생순경으로 바꾸기에는 지극히 <역부족>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놀라지 말라! 너는 내 것이다.” 이 <사랑과 언약의 하나님>을 확신하며 신뢰할 때, 언제 어디서든지 능히 <인생의 유라굴로>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