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아버지 자리는 시대적 흐름을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가족 구성원 중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지도, 통솔하는 부권을 상징하던 가부장적 자리였었다. 한데 갈수록 권위의식이 약화되고 가족의 발판이 심각하게 흔들리는 부권 실추 위기에 놓였다. 이를 인식한 젊은 아빠들이 창출해내고 있는 아빠 자리를 바람직한 아버지 상으로 자리매김 해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을 안고 아버지 자리의 시대적 비교와 변천 흐름을 나누어 보려 한다. 아버지 자리는 선사시대부터 그 역할을 배우고 익혀가며 아버지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한다. 원시사회 수렵 채집 시대의 아버지는 자녀와의 친밀성이 돈독했던 양육자 관계였다고 한다. 이후 목축과 농경 시대를 지나오면서 잉여물 축적으로 인한 공동체 간의 계급 문화가 발생하면서 아버지 자리는 권위주의 힘을 입게 되었다고 한다.
농경시대 아버지 자리는 대가족을 거느린 기둥으로 대들보 도리를 준엄하게 지켜내야 했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 아닌 동네 어르신으로 마을 구심점이었고 도덕적으로는 유교 문화권에서 파생된 남존여비 사상 정점을 찍어왔던 여세 당당한 아버지 자리였다.
산업화 시대 아버지 상은 가족을 등에 업고 살아가기 위해 몸을 던져왔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해외 취업도 불사하며 경제적 버팀목으로 크고 작은 가정사에까지 묵묵히 감내해야할 책임이 불문율처럼 받아들여졌던 시절이었다. 가정의 든든한 초석으로 버텨야 한다는 책임감 뒤엔 외로운 고독이 숨을 죽이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 기대치를 의식하며 훌륭한 아빠, 책임감있는 가장이 되어야한다는 바람직한 모색을 멈추지 않았어야 했던 이 시대 아버지들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는 무게감이 더해지고 있었을 것이다.
21세기로 접어든 아버지 자리는 핵가족 형태로 바뀌면서 맞벌이 구조로 변천을 했다. 가장의 경제력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가정 경제가 재구성되고 맞벌이시대 아버지 자리는 가족 행복에 몰두하게 된다. 아내와 나란히 출퇴근을 하고, 앞치마를 두르고, 집안 청소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주말이면 쇼핑 카트를 밀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마련해야하는 실정을 소셜 미디어에서도 공개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버지 자리에 있다는 빌미로 권위적 지위를 남용했던 아버지 횡포에 반론을 가지고 자란 신세대 아버지들은 통솔을 위한 위력보다 의식 변화가 먼저임을 눈 뜨임하게 되면서 사소한 일부터 칭찬과 격려를 앞세우며 의견 존중과 경청으로 다가가는 아빠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독재가 아닌 민주적 환경을 배경으로 가정을 꾸려가는 신세대 아버지 들에게 높이 평가하고 싶은 공치사 아닌 격찬을 보내면서 고무적인 아버지 자리를 기대해도 될 듯하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었던 가부장적 절대권력은 어언간 쇠락의 길을 걷고 아버지 자리 또한 자칫하면 외톨이로 밀려나는 위기론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할아버지 자리에 이른 아버지들의 고민을 엿들어 본다. ‘인과응보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살아온 내력으로 받아들이려 하지만 가족 울타리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가장의 위상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가족으로부터 유배당한 것 같은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외로움과 소외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살아온 날들을 점검하 듯 돌아보며 시대적 착오를 뒤 늦게야 인식하게 된다. 봉건적 가정에 익숙해온 터였기에 부자 간의 대화라는 것을 해본 적도 배운 적도 없었고, 부모와 놀아본 경험이 전무했기에 아이들과 노는 것도 어색하고 쑥스러워 격세지감에 마음이 무너진다고. 엄격하고 독선적, 일방적인 이기심을 아버지 자리에 어울리는 권위의석으로 착각했던 그릇된 가치관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지만 너무 멀리 와버린 공백을 무엇으로 메꿀 것인가.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고.
구태의연한 아버지 모습을 내려놓고 가족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참 아버지 모습을 복원해가고 있는 신세대 아버지 자리에 계신 분들께 감사의 기립 박수를 뜨겁게 보내드립니다. 모든 세대에 아우르는 아버지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부디 행복하신 아버지 날이 되시길 빌어드립니다. 아버지 자리는 아빠가 되면서부터, 영원으로 떠나는 날까지 지켜내야 하는 것이기에 그 수고가 끝나는 날까지 부디 건강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