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환경과 상황>에 결코 굴하지 않은 믿음의 영웅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옥중에서도 감옥이 주는 절망과 고통과 압박 앞에서도 전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초대교회의 <믿음의 중심축 역할>을 훌륭하게 잘 감당한 사도 바울입니다. 골로새서를 비롯하여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의 서신들을 “바울의 옥중서신(Paul’s Prison Epistles)”이라 합니다. 바울의 옥중서신의 공통점은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격려와 소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15~16에서 바울은 두 가지를 통하여 골로새 교회에 <용기와 소망>을 주려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평강>과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환경과 상황>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이 의문점의 실마리를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믿음의 중심축을 만들라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믿음의 중심축을 만들라!>는 바울의 중심사상은 헬라어 <브라뷰에토>라는 동사로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브라뷰에토>의 뜻 가운데 <다스리다(Rule)>는 뜻이 있습니다. 철의 여인, 마가렛은 “사람의 인생은 <생각>이 <말>을, <말>이 <행동>을, <행동>이 <습관>을, <습관>이 <인격>을, <인격>이 <운명>을 다스린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다스림의 중심축인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인생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달라집니다. 사도 바울이 초대교회 교인들의 삶을 돌아볼 때, 그들의 삶은 <믿음의 중심축>이 <상황과 환경>에 따라 늘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상황과 환경>이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그 마음 가운데 두 가지만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면 결코 흔들림 없이 믿음의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환경>과 <상황>은 각자 처한 경우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중심축>이 되는 <그리스도의 평강>과 <그리스도의 말씀>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경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27의 <그리스도의 평강> 그리고, 요한복음 15:7과 롬 10:17의 <그리스도의 말씀>이 믿음의 중심축이 되어 우리의 생각을 이루는 “선험적 사고(Pre-occupied Idea)”가 된다면 사도 바울처럼 <상황과 환경>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믿음의 중심축>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그 어떤 경우에도 당당하게 담대하게 확신합니다.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믿음의 중심축을 만드십시오. <그리스도의 평강>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