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코뿔소의 심장>은 코뿔소의 공격적 성격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장기(臟器)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온순한 듯 하지만, 그의 예민한 저돌적인 성격을 자극하게 되면 죽음을 무릅쓰고 <오직 앞으로> 전진 일관하는 야생동물입니다. 이와 같은 <코뿔소의 야성>을 지닌 <신앙 공동체>를 비유하여 어윈 라파엘 맥머너스(Erwin Raphael McManus)는 <코뿔소 교회>라 지칭합니다. 21세기의 포스터모더니즘 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신비의 역사>보다 <교리와 신학의 테두리>에서, <성령님의 역사>보다는 <소위, 프로그램과 액티비티>의 교회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의 흐름을 역류하여 <개혁적인 교회의 롤모델>로서 어윈은 혁신적인 교회, <코뿔소 교회>가 이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보다 훨씬 이전에 <코뿔소 신앙>을 가진 초대교회의 종교개혁자가 있습니다. 그는 <코뿔소 심장>을 가진 <코뿔소 신앙의 대가, 사도 바울>입니다.
<코뿔소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울의 야성적 신앙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원래 그 이름이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의 회심사건>으로 인해 <코뿔소 신앙의 대가>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는 <살기등등한 예수핍박의 선봉장>으로서 <참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히 말살시키려는 목적에 혈안이 되었던 자입니다. 바로 사울의 <코뿔소 심장>은 다메섹 도상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꾸신 것입니다(행9, 22, 26). 그래서 초대교회의 아이콘 같은 인물인 바울은 <코뿔소 심장>으로 <코뿔소 신앙>을 펼쳐나갈 것을 선포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초대교회와 같은 <정상적인 목적있는 신앙>을 가져야 할 21세기의 교회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운동력을 가져야 하며, 시간을 관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창출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코뿔소 신앙>의 대명사인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가져야 할 심장은 <예수님의 심장>입니다. <예수님의 심장>은 <포기와 낙심, 절망과 세상타협>을 도외시하시고, 오직 <십자가와 구원의 복음>을 목표로 하셔서 <세상의 어떤 유혹>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으시고, <모험적인 신앙의 야성>으로 마침내 목표를 달성하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야성적 신앙>을 닮은 <바울>에게서 우리는 <오직 전진, 오직 믿음>으로 <죽음>도 불사하며 나아갔던 <바울의 신앙>에서 우리는 <코뿔소 신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코뿔소 신앙의 예수와 바울>. 교회는 모름지기 <도피처>, <안전지대>를 기대하면서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한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면서 <천국목표 지향적인 교회>, <의(義)목표 지향적인 목적이 이끄는 교회>를 향하여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코뿔소의 심장>처럼 <과단성 있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시지만, 그 마음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비와 긍휼>의 사랑은 <코뿔소 신앙>의 핵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비와 긍휼의 최절정>의 장소인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심장은 <구원과 용서>의 목표를 향해 <코뿔소 심장>처럼 결코 <포기와 타협>을 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일관하시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입니다.”(눅 23:34)
<당신의 심장은 코뿔소의 심장처럼, 예수님의 심장처럼, 바울의 심장처럼 참 목표를 위해, 참 목적을 위해 중단하지 않고 달리십니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라!”(요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