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깊은 밤 먼 기적소리가 불현듯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엄마가 아니었던 시간들이 떠오를 때면 그 시절 정취에 이끌리듯 기적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기에 삶의 결을 외면해온 겨를 사이에 촉촉하니 서려 있었던 회한들이 세월 속에 묻혀버린 줄 알았는데 기억 저편에 흐트러짐 없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나 보다.
엄마가 되기 전엔 눈부셨던 노란 개나리 앞에서 유장한 순간의 숨결을 즐겼었는데 엄마가 되면서부터 개나리가 노랗다는 것 조차도 잊어 버린 채 살아왔던 것 같다. 어미 노릇이며 지아비 아내로 질곡의 여정을 삼키느라 노을을 바라다 볼 여분의 서정조차 없었던 통절에 목이 아린다. 고단했던 삶의 무게들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살아온 것은 유일한 핏줄로 유착된 친밀성을 저버리지 못하는 까닭일 게다. 딸들이 떠나버린 빈 둥지에서 바람결에 맡겨두었던 시간들을 풀어 달라며 느닷없이 조르고 싶다.
엄마와 딸은 누가 뭐래도 보기 좋은 동반자이다. 사이 좋게 나란히 걸어가는 공생 공존의 운명체 같다. 아기였을 땐 엄마의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 했듯이 한 시대를 살아 낸 엄마가 기운이 기울어 가고 낡아진 노구를 감당 할 수 없을 무렵이 되면 젊고 패기 넘친 딸들이 절대적인 보호자로 자처하며 나선다. 스스럼 없이 기대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면서 엄마와 딸은 공생 관계를 유지해 가기에 가장 적절한 연으로 남게 된다.
생각이, 몸이 낡아지면 상생 관계를 붙들려고 하는 본능이 일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딸들에게 남겨진 여분의 현모양처 자리가 어찌 그리도 녹록치 않은 경사진 언덕으로 보이는지. 엄마보다는 젊을 수 있겠지만 가외일 수 없는 생의 노정이 기다리고 있기에 딸의 여력을 넘보 듯 기대는 것 조차에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아서 여전히 씩씩한 엄마로 남기로 한다. 나약해진 의지를 숨기려는 빈 둥지 궁색을 들킨 것 같은 면구스러운 마음 빈곤을 숨기기에 급급해진다. 노심은 하루를 다 떠나 보낸 저녁 노을이 하루 중 가장 아름답다는 역설을 붙들려 한다. 남은 여정 동안 더는 딸들의 일상에서 잊혀지려 몸을 사린다. 두렵고 안쓰러운 충격이다. 함께 여정을 걸어오며 서로에게 기쁨의 근원이 되었던 시간들은 생생한데 문득 돌아다보니 어느새 어둑어둑 땅거미 지는 무렵 임을 부인할 수 없음이 충동적 자극 인센티브가 되어버린 것 같다.
모든 모녀들은 엄마가 되기 전에 먼저 딸이었다. 엄마와 딸, 할머니와 엄마, 엄마와 손녀로 뒤섞이는 존재 나열이 숱하게 포개지는 공통점들을 명암 없는 피사체처럼 당연한 것으로 시인하기도 하고 동떨어진 외로움 까지 질서 지킴이 오기처럼 연결고리를 지각없이 더듬게 된다. 노파심 발로가 아니었음 좋으련만
잔 손이 줄어들 무렵부터는 자식으로부터 받은 은공의 부피가 부모 자리에서 본능으로 부어준 사랑의 부피에 비할 바가 아님을 일찍이 고백해 두었어야 했는데. 숨기고 싶은 집중력 난립의 병폐를 딸네들의 예지와 매사를 정확히 바라보는 슬기로운 시선 앞에 안도의 숨결을 살포시 내려놓게 된다. 딸네들 가정마다 항시 평온함이 깃들기를 기도하기에 앞서 마음 깊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액같은 사랑의 언어를 만들어 내야한다는 집요가 일상을 서성거린다. 엄마가 걸어온 어설픈 길은 걷지 말아야 한다는 초조감이 일구어낸 반전처럼 딸네들의 아름다운 성취를 꿈꾸며 기도에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지기를 할 참이다.
다사로운 감성 언어를, 좀 더 따뜻한 표현을 연습해야 한다는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고 진행중이다. 엄마라는 자리는 사랑의 탁월함을 용인받아야 한다는 소박한 짐작을 뛰어 넘을 줄 알았어야 했다. 엄마가 되어 딸을 품 안에 안았을 때도, 손주를 품에 안겨 주었을 때도 줄기차게 떠올랐던 것은 만족스러운 좋은 엄마란 어떤 엄마일까. 떠나는 날까지 엄마의 자리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인데. 딸들이 바라보게 될 남은 삶들을 어떻게 그려갈 것인가, 접속 점의 질서와 그 효용에 대한 해답 없는 물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자식이었던 자리에선 부모 은공을 갚지못한 죄스러움이 마음을 무겁게 했는데, 자식의 울타리가 되어야하는 부모 자리에선 주어도 베풀어도 못다해준 것만 섬처럼 남겨진 자책감이 언제까지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손주들의 해맑음이 물방울 같은 밝음으로 경쾌하게 도드라지며 마음을 울린다. 엄마의 소곡 소나타는 대가족 콘체르토 협주곡의 웅장한 오케스트라에 어우러지며 깊은 밤, 먼 기적 소리를 따라 멀리 멀리로 번져나갈 것이다. 어머니 날이 아닌 날 들에 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