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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심리 상담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2-04-25 14:53:24

이동욱, 심리상담, 전문가 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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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임상 심리학 박사)

 

심리 상담을 문의하거나 요청하는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심각한 문제가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 문제 그리고 중증 정신 질환을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면, 대부분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절실한 마음으로 치료자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한마디로 당면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찾아온다는 뜻이다. 

이제 방향을 바꾸어 치료자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치료자들은 본인의 전문분야가 있다. 인터넷에서 클리닉 홈페이지와 치료자들의 프로필을 찾아보면 부부 문제, 약물 중독, 트라우마, 우울증 등 그 전문 분야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대학원 초기의 임상 수업이었던 것 같다. 영어가 완벽하지 못한 동양인인 나로서는 무척이나 부담이 되었던 현장 수업이었다. 학교에 부설된 수련 전문 클리닉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환자를 만나는 한마디로 ‘실전’이었던 수업이어서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 수업의 첫 날 첫 시간에 들었던 한 노련한 치료자의 말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상담실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기 저 문을 열고 들어 오는 사람이 무슨 문제를 가지고 올 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게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이네.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찾아왔는데 우리는 전문 분야를 들먹이며 환자를 그냥 돌려보내지." 수련생들에게 다양한 문제를 능숙히 다룰 수 있는 치료자가 되라는 우회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전문 분야를 막 결정하고 열심이었던 나에게는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환자의 최선을 위해서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니면 돌려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었다. 처한 상황이 아무리 안타깝더라도 비전문분야에서 치료를 시도하는 것은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도 안되는 일이다. 이것은 치료자라면 누구나 숙지하고 실천해야 하는 중요한 원칙이다. 그럼에도 그의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오기까지 환자와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과 눈물의 시간들을 외면해야하는 현실이 괴로웠던 것이다. 게다가 돌려보내진 환자들이 마땅한 치료자를 찾기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질문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찾아다니며 열심히 배우고 수련을 받았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을 찔렀던 그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가슴을 쥐어짜는 한숨,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일그러진 얼굴, 뜨거운 눈물 방울들을 닦아낸 크리넥스 더미를 수없이 경험하면서 희미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상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게 한 가장 급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환자는 본인의 고통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한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치료자를 찾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만 사라지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것 같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으로 지독한 불면증에 걸렸던 사람이 편안한 잠을 자게 되고,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부수던 사람이 화를 참을 수 있게 되고, 끊임없는 걱정과 염려로 일상 생활이 어려웠던 사람이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 다 좋아질거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그 문제만 해결이 되면, 그 문제만 없어지면, 그것만 성취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풍요롭고 행복해질까? 수백년 전 토마스 아켐피스는 "어디에 가든지 당신은 당신 자신을 데리고 간다. 항상 당신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인생의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어느 동네에 살고 있든지, 어떤 직장에서 일하고 있든지, 재산이 얼마나 되든지, 건강하든지 아니면 병으로 고생하든지, 어떤 배우자와 살고 있든지, 우리는 우리 자신 그 자체임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최근에 우연히 보게 된 한국 드라마에서 등장 인물들이 경기도의 외진 지역에 살고 있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고생을 한탄하면서 “우리도 서울에 살았으면…” 하고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다. 서울에서 살기만 하면 정말 달라질까?

증상은 단순한 기술과 연습으로 호전될 수 있다. 복잡하지 않은 증상이라면 굳이 전문 치료자를 찾을 필요없이 당장 유투브를 검색하거나 인기있는 자기 개발서를 펼쳐보라. 훌륭한 정보를 만날 수 있다. 마음을 쏙 빼놓는 유창한 달변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듯 속이 시원할 것이다. 그리고 서울로 이사가는 것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라고 믿는다면 서울로 이사를 가면 된다. 

치료 장면에서 환자의 우여곡절과 상상하기 어려운 인생의 드라마를 마주하다보면 정말 마음이 시리고 아프다. 하지만 마음을 더 안타깝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하는 것이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사람들은 상담의 과정도 똑같이 대하려한다. 치료자에게 빨리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해달라고 요청한다. 가끔씩 사람들로부터 누가 정신적인 문제로 너무 고생하고 있으니 한번 만나서 이야기 해줄 수 없느냐고 요청을 받는다. 정현종의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에는 이런 유명한 구절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중략)…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하물며 인생길의 우연한 방문객이 이럴진데, 고통의 눈물을 머금고 치료자와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일까. 가슴을 무너뜨리는 고통을 안고 찾아오는 이에게, 인생 이야기를 전심을 다해 쏟아내는 이에게, 단지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에 대한 모욕이다. 그 어마어마한 인생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엔 한 번의 만남은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도 치료는 감정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부끄럼을 무릅쓰고 토해내는 과정이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살 속 깊이 파고든 고름을 짜내고 뼈를 깎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새로운 인생 여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기나긴 시간동안 송두리째 삶을 지배해 온 문제가 한두 번의 치료 세션으로 해결될거라 믿는다면 상담가를 찾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당장의 급한 문제와 증상이 해결되고 사라진다고 해도 어디에 가든지 당신은 당신 자신을 데리고 갈 것이고,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기 때문이다.    

인디언의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생쥐가 고양이 때문에 항상 두려워하며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생쥐는 신에게 자신의 처지를 간절히 말했다. 신이 듣고 나서 측은하게 여겨 생쥐를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동네에는 사납고 큰 개가 살고 있어서 여전히 두려움 속에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신은 다시 고양이를 개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자 표범이 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은 개를 표범으로 변하도록 해주었다. 표범이 되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가죽을 목표로 돌아다니는 사냥꾼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다시 두렵다고 신에게 하소연 하였다. 이번에는 신이 표범을 다시 원래의 생쥐로 바꾸어 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해주더라도 네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왜냐면 너는 생쥐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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