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호산나 예수의 미션은 “호산나”를 외치는 사람들의 환호소리에서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기대감이 바로 예수님의 미션이 들어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 환호성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당당하게 입성하실 것을 시편 118편에서 이미 예언을 하였습니다. 구원을 간절히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억압에서 풀어 줄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지만 예수님의 가장 큰 미션은 <오직 구원>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현실이 예루살렘 입성 당시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현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해결하셔야 할 <대 난제>는 온 인류의 죄의 사슬을 풀어주어야 할 <왕의 미션>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 함성의 간구는 <정치적 메시아 예수>가 아니라, <구원의 메시아>로서 예수님께서 걸어야 할 고난의 첫 발걸음입니다. 아무도 그 길을 대신할 수 없는 <고통의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의 길을 <한 번도 사람들이 타 보지 않은 어린 나귀>의 등을 타시고, <왕의 미션>을 가지고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우리 또한 외쳐야 합니다. “호산나!” 무엇이 호산나의 강력한 예수 그리스도의 미션일까요? “승리의 미션”을 이루어야 하실 호산나 예수는 단순히 사람들의 환호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만이 감당하셔야 할 <십자가의 고난>을 마음에 품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 구원을 위해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천명하는 말, 그것은 <호산나의 신비>입니다. 호산나 예수의 미션은 단순히 한 인간의 고뇌를 대신하고자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호산나 예수의 미션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사형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서는 결코 이 엄청난 미션이 해결되지 않으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기에 <용기의 결단>을 과감하고도 당당한 모습으로 보여주신 것이 <호산나 예수의 미션>입니다.
왕의 입성을 맞이하는 당시 예루살렘 성민들이 흔들었던 그 종려나무 가지는 <지속적인 믿음의 행진>으로 일관하시겠다는 <호산나 예수의 미션 파서블>을 전제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고통이 겹겹이 싸여있어도, 오직 예수님만이, 오직 예수님 외에는 그 누구도 <호산나의 미션>을 감당할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호산나 예수의 미션 파서블>,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붉은 피, 선혈의 십자가>입니다. <죽음의 쓴 잔>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바로 이 행동의 미션을 이루시기 위한 <미션의 대서막>이 전개되는 예수님 앞에서 오늘도 우리는 <호산나 예수여,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