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되는 시편 1편은 시편 150편의 대서사시 가운데 서막(Prologue)에 해당됩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의 방법으로 축복하십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도구 혹 통로로서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의 증거로 축복하십니다. 히브리어로 말하자면 전자는 <에쉐르>요, 후자는 <바라크>입니다. 시편 1편에서 언급하고자 하는 <에세르의 축복>은 <사순절의 주인, 부활절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직결된 축복>이요, <바라크의 축복>은 인간의 선행과 관계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자비의 축복>입니다.
시편 1편은 <천국의 서막(Kingdom Prologue)>을 알리는 장엄한 천국 대서사시의 서론이자 본론이며, 동시에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순절의 주인, 부활절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마스트 플랜>은 첫째도, <하나님의 나라>요, 둘째도,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마지막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나라입니다(Cf.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천명하신 <오직 길표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바로 시편 1편 1절에 선포하신 <복 있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복>입니다. 이 복을 주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는 <두 가지 천국 패러다임의 메인 프레임(중심축)>에 해당하는 큰 대업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목적이 있는 신앙(The Purpose-driven Faith)>, <목적이 있는 인생(The Purpose-driven Life)>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이신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없는 기독교, <십자가와 부활>이 없는 신앙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고전 15:19). 오늘날 이 지구상에 만연하여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거듭 거듭 변이 바이러스로 변모하여 지구촌 전체를 마치 정복할 듯이 그 기세가 등등한 것 같지만, 이 기세도 언젠가는 종착점이 있습니다. 꺾이고 무너질 날이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행복의 동산, 에덴>에서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다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저주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원시복음을 통하여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Cf.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기 위해 세 가지를 항상 경계하며 조심해야 합니다. 첫째, 입니다. 사지백체가 멀쩡하다고 함부로 걸어 다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악인들의 꾀를 따라 걷지 말라(시1:1)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입니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시1:1)
셋째, 입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시1:1)
목적이 있는 신앙, 목적이 있는 인생의 롤 모델을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앞에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신 모습에서 단 한번도 예수님은 악인들의 꾀를 따라 걷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유혹과 환난의 위기 앞에서도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능력과 행함의 신앙으로 수많은 기적을 베푸시며 인기가 충천하는 상황 앞에서도 결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으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이루는 <축복의 통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