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주도한 12.12사태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무력으로 진압하고 사살한 군사독재정권을 반대하기 위해 SOCIET 87이란 모임이 만들어졌고 발기인과 회원은 김태형 박사 부부와 안수웅 닥터 부부, 민수정사장 부부, 김영준 닥터 부부, 안춘완 사장 부부와 우리 부부 등 12명이다.
우리는 조용히 매달 한 번씩 모여 군사독재정권 반대를 위한 투쟁방법을 논의했다. 나는 타의에 의해 초대 회장이 됐는데 모임이나 단체는 때에 따라 떠밀려서 회장이란 직책을 맞게 되는 일이 많이 있다. 그 때문에 회장이 됐고 회원들의 뜻에 따라 미 정계와 워싱턴 인권문제연구소와 투쟁방법을 논의하면서 김태형 박사와 김경숙 교장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리고 김 박사의 권유로 한국학교 이사가 됐고 4년간 이사장 직을 통해 한국학교 후원의 밤을 개최하고 건축기금 모금에 성공적인 역할을 하고 20년 이상 이사직을 수행했다. 그리고 현재도 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한국학교를 위해 헌신해온 김경숙 교장이 은퇴할 때까지 함께 일을 했고 김태형 박사는 남 모르게 한국학교를 위해 도왔다. 김 박사는 에모리 의대 교수였고 대학병원 소아과 과장이었으며 백혈병에 대한 권위자다. 김 박사는 세상사에 대한 박식한 백과사전이다. 독서광이라고 할 정도로 안 읽은 책이 없는 특별한 분이다. 한참 후에 알게 됐는데 김 박사의 친형이 KBS TV 기술과 김태업 계장이었고 그분은 나와도 친분이 두터웠다. 그분은 KBS TV를 그만두고 운전학원을 시작했는데 그 때 특별히 나와 탤런트들에게 무료로 운전교육과 면허를 취득케 해주었다. 그리고 공군 예비역 대령인 그분의 아버님도 알게 됐다. 김태업 씨는 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니까 자기 동생도 미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남의 일처럼 흘려버렸다. 그런데 우연히 애틀랜타에서 김태형 박사를 만나게 돼 정이 깊이 들게 됐다. 김 박사는 은퇴 후 아산병원에서 근무할 때도 자주 서울에서 만났고 롯데 호텔에서 칼럼집 출판기념회도 형님인 김태업 씨와 함께 와 축하를 해 주었다.
김경숙 교장과 이사장인 나는 개학을 앞두고 학교로 사용해오던 천주교 건물을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게 돼 폐교 위기를 겪으며 함께 난관을 극복해왔고 그리고 한국학교 후원의 밤 행사와 건축기금 모금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다 했다. 그리고 훗날 한인회관 구입에 큰 공을 세우게 된 종자돈이 됐다. 김 박사는 나보다 나이는 적지만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애틀랜타에서 김태형, 김경숙 부부를 만나 우정을 나누며 살게 된 것이 감사하고 기쁘다. 그리고 애틀랜타에서 훌륭하고 좋은 많은 분들을 만나 함께 살게 된 것이 고맙고 행복하다. 역시 나는 운이 좋은 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