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미국에서 10년 이상 살며 여러 도시로 이사를 다니면서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느 도시든 돈과 크레딧만 좋으면 쉽게 아파트를 구할 수가 있다.
아들 홍석(Douglas)이와 딸 희정(Jeana)이가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을 다닐 때도 쉽게 아파트를 구했고 애틀랜타도 아파트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가격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애틀랜타로 이사온 후 홍석이는 에모리 법대를 다니고 민정(Lauren)이도 에모리 대학을 다녀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둘째 희정이가 텍사스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 법대를 진학하게 돼 보스턴에 아파트를 구해야 하는데 우리는 크게 걱정을 안 하고 개학 일주일 전 쯤 보스턴에 가 아파트를 구할 계획이었는데 그것이 큰 잘못이었다.
문제는 미국을 잘 몰라 현지 사정을 전혀 고려치 못하고 사전에 답사를 하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 그 때문에 희정이가 한 학기 동안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겪게 됐다. 원인은 나의 주먹구구식 오판과 무지 때문이었다. 보스턴 시의 아파트 상황을 알았다면 아무리 바빠도 현지답사를 하고 미리 아파트부터 구했을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방심한 채 사업과 한국학교와 한인관계 일을 하고 연극 연출까지 하면서 개학날이 다가온 후에 보스턴에 있는 부동산 업자에게 아파트가 필요하니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개학 때가 되면 보스턴은 아파트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개학 직전 보스턴 부동산업자를 찾아가 전화로 부탁한 아파트를 안내해 달라고 하니까 개학 때라 빈 아파트가 없다며 학생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아파트를 안내했는데 아파트들이 전부 다 엉망진창 난장판이고 남녀 학생들이 여러 명씩 함께 살고 있다.
부동산업자는 싫으면 그만 두라는 식이다. 참으로 난감했지만 원인은 모든 것이 내 탓이다. 부동산업자도 잘못이 없다. 전혀 알지도 못하고 크레딧도 알 길 없는 동양인이 그것도 전화로 아파트를 구해 놓으라고 한 것을 신경써야 할 일이 없었고 또 아파트를 계약해도 수수료도 몇 푼 안 되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다 될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한심할 뿐이다. 부동산 업자에게 간곡히 부탁해 다행히 대학인근 저가 아파트 지하 공동세탁소 옆 구석방 하나를 얻게 됐다. 부족하지만 그나마 혼자 사용할 수 있는 방이라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파트가 너무나 형편없어 딸을 그런 낯설고 형편 없는 곳에 두고 보스턴을 떠나게 되니 가슴이 아프고 기가 막혔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참고 비행장을 향했다.
유명한 학교들이 많아 학생들이 가장 많은 보스턴은 학생을 상대로 발전한 특별한 도시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어쨌든 딸은 불평 없이 보스턴 법대를 졸업해 감사하면서 사노라면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또다시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