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관계(Relationship)를 다리에 비유한다면, “사람들은 벽은 많이 쌓아 올리는데 다리는 적게 쌓는다”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Isaac Newton이 <예봉의 격언>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가장 필요한 것 역시 다리입니다. 성경 66권을 하나의 다리로 이어본다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입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가장 친밀하게 묶는다면 그것은 “목자(히브리어, 로에)와 양(히브리어, 촌)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우리를 양으로 표현한 성경은 대표적으로 <시편 23편, 에스겔 34장, 요한복음 10장>입니다. 이 가운데 다윗을 목자로서 비유하면서 그리스도의 모형론적인 인물로 지목하여 표현한 말씀은 에스겔 34장입니다.
목자는 자신의 목숨보다 양의 목숨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참 목자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34장에 나타난 목자들 중에 <삯군 목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삯군 목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계십니다. 삯군 목자는 “양 떼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도록 방치하며, 잃어버린 양을 찾지도 않는다”고 지적하십니다(겔34:7) 삯군 목자는 “양을 먹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삯군 목자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4장은 이제 참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회복(Restoration)”을 이룩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스스로가 <회복의 목자(Shepherd of Restoration)>가 되시겠다 약속하십니다.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을 누워있게 할지라.”(겔 34:12~16) 이것은 회복의 목자, 야훼 하나님의 언약임과 동시에 성취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입술을 친히 말씀하십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1~6) 그리고, 드디어 성탄의 구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정확하게 역사의 한 가운데로 찾아오셔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이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요10:1~21)
지금 시대는 <선한 목자, 회복의 목자, 치유의 목자, 구원의 목자 야훼 하나님>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시대의 상황과 문화의 충격이 안겨다 준 <시대의 혼돈>이 이 시대의 양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선한 목자, 회복의 목자 야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니, 우리가 예수의 피를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나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회복의 목자 야훼 하나님께 나아가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회복의 목자 야훼 하나님께 더욱 모이자(그리하자).”(히브리서10:19~25) 회복의 목자,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를 찾으십니다. 살진 꼴로, 푸른 초장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거기로 나오라 하십니다. 모이는 것을 폐지하지 말라 하십니다. 시대적 상황과 악조건의 여건이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결코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