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조급함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Impatience makes nothing)”이란 격언이 있습니다. 이 조급함의 정반대 말이 바로 “천천히 하라(Slow Down)!”입니다. “Slow Down!”은 “평안(Peace)”의 동의어입니다. 평안이란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삶의 최고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심도 “하루 하루(Day By Day)”의 순서와 경륜에 따라 “Slow Down”의 원칙하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창조의 섭리는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일치합니다. “성령과 물과 피”로 이 땅에 임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즐겁고 복된 날이므로 온 인류가 Merry Christmas라 일컫습니다(요일 5:8). 이사야는 아기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사9:6~7)로 평강에 평강을 더하심이 영원하심을 찬양하였습니다.
“Slow Down”은 예수님의 평강을 현대적인 표현일 뿐 아니라, 천지창조에서 구원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섭리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현대인의 모습은 “Slow”를 혐오합니다. 인터넷도 하이 스피드를 선호하고, 음식조차도 정크 푸드를 선호합니다. 모든 것을 “빨리 빨리”의 패러다임에 맞추려 합니다. 그러나, 정작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고”(요한복음 10:10) 이 땅에 선한 목자로 찾아오신 메시아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첫 단계를 베들레헴 말 구유에서 아기 예수로 탄생하시는 “성육신(Incarnation)”부터 한 단계 한 단계 “Slow Down”의 패러다임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Slow Down”은 결코 실수가 없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10:10). 생명은 사람의 주권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만군의 야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일점일획도 어긋남 없이 정확무오하게 이루신 그리스도의 구원은 오직 “사람의 열심”이 아닌 “만군의 야훼의 열심”이 “무궁한 평강”을 이루실 것이라 선포하였습니다.
“Slow Down”은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강>입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활개를 친다할지라도 영원한 구주 예수님은 <탈 상황(Sits Im Leben)>이 아니라 고난의 십자가, 능욕의 십자가의 험준한 가시밭길을 헤치고 과감하게 당당하게 담대하게 <입 상황(Sits Im Leben)>의 예수, 즉 목하, “희망의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of Hope)”로 입성하십니다. 오직 예수, 오직 희망, “Slow Down”이지만 정확무오하게 언약의 성취의 주님으로 “ 평강의 왕”으로 오십니다. 이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만군의 야훼의 열심”으로 이렇게 선물하십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