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창가에서 내려다 본 우리 마을이 아름다운 단풍으로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가을이 이렇듯 예쁘게 익어가는데 이도 저도 외면해버리고 읽던 책을 집어들고 쇼파에 길게 누워버린다. 귀차니즘에 이리저리 엮여지다 못해 끝내 엉겨지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 신조어로 탄생한 귀차니즘은 세상만사 귀찮아서 게으름을 피우는 현상이 고착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반기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일상을 비집고 들어와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귀차니즘의 비롯은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일에 의무가 너무 많기 때문일 것 같다. 늘상 해야할 일들이 빼곡히 줄을 서 있다. 유년기에 귀찮음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의무가 많지 않았던 것 처럼, 의무란 것을 지금껏 극복해온 것은 의무를 감당하다보면 완성과 완결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험해왔기 때문일 게다. 지쳐있거나 피로가 쌓이면 당연히 만사가 귀찮아지기 마련인 것. 귀찮다는 핑계로 미루는 습관이 한동안은 활개를 치지만 이를 떨쳐버리는 행위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미루지는 말자로 돌아서기 시작하면 새로운 생기가 솟아나고 한걸음 발전한 단계로 들어선 자신이 대견해지고 귀찮음을 극복하는 순간 매사에 열정이 일기 시작하는 것인데 나이 들면서 체력이 저하되고, 젊은 날 소모해버린 의욕 고갈상태로 귀차니즘을 몰고 오기도 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귀차니즘이 있지만 생소한 일을 만났거나 번거롭고 성가신 일이 기다리고 있을때, 그 과정에서 유발되는 스트레스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귀차니즘은 깃발을 펄럭인다. 귀차니즘이 조리과정을 최소화한 인스턴트 식품을 등장시켰다. 소통의 과정도 그렇다. 편지에서 급한 소식은 전보로 해결했지만 텔레타이프 개발이 드디어 휴대전화로의 변천을 거쳐 스마트폰까지 지속적 발전을 거듭하고, 스마트폰으로 밥솥을 원격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은행에 직접 가지 않아도 금융거래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가까운 날에 인류가 움직이지 않아도 의식주가 해결되고 뇌파 감지를 통해 명령이 전달되는 세상을 초래할 것이다. 귀차니즘은 생활을 보다 편리함으로 지향하게 했고 실용적 기술개발로 발전을 도모하게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귀차니즘으로 인류의 삶이 발전의 한계에 도달하면 인류는 아무 것도 안 할 수도 있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고 모두가 편리의 정점에서 여가 생활에 몰입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겠다 싶은데 어쩐지 알지 못 할 두려움이 앞선다. 게으름의 결국이 인류를 무능하게 만들 것 같은 두려움이 파생할 불안이 마음을 흔든다. 귀차니즘이 밀려들기 시작하면 뽀족한 대처법이 떠오르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인간은 미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위로를 앞세우게 된다. 귀차니즘 통제를 위해서는 에너지 소모가 따를 것이라는 경고신호가 깜빡인다. 아예 하던대로 하자는 결론이 재빨리 뇌를 회전시키고는 매번 에너지 소모에다 의지력을 진작시켜야 하는 힘든 나날들보다 평소에 해왔던 크고 작은 습관 중에 좋은 습관일랑은 키워내고 그 기세를 타고 자동 항법장치를 고정시켜두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 나이 먹어가는 와중에 무슨 부지런을 피운다고 제대로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랴. 근사한 이유를 덧칠하면서 귀차니즘으로 자리매김을 하려는 속셈을 들여다 보면서도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호응해주지 않는다. 나이 먹어가는 와중에 무슨 부지런을 피운다고 제대로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랴. 귀차니즘을 외면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을 기대해 보지만 예전보다 게을러진 자신을 깨닫는 것 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며,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는 사유를 인정해주며 귀차니즘에 슬며시 한발 들여놓는 노심을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 유용도가 허실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그 날들을 무릎 앞에 앉혀두고 이제는 피로 누적으로 지쳐있다는 이해를 촉구해본다. 머뭇거림의 발로가 귀차니즘을 촉발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조바심을 잠재우는 일등 공신이 되기도 한다.
엄마의 자리를 때로는 귀찮다여기면서도 꾸역꾸역 자식 편한 길을 열어준다. 제몸 건사해줄 웃도리 하나 걸치는 것도, 따습게 해줄 양말하나 발에 끼는 것 조차도 귀찮아하면서. 사랑은 그렇게 귀차니즘까지도 거뜬히 극복할 만큼 삶을 열정적으로 만든다.
어차피 귀차니즘은 수시로 찾아드는 것이라서 당당하게 귀찮아 하자며 동네 가까이에 있는 도보로 가능한 공원을 찾아나섰다. 나무가 하늘을 가리듯 아치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오솔길로 이어진 산책로다. 깊어가는 하늘도 가을 아름다움에 걸맞는 풍치를 그려내고 있다. 오솔길도 귀차니즘을 떨쳐낸 방문객을 반기듯 낙엽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귀차니즘의 속성이 인간이라는 문명의 진화궤적을 조율하고 통제한 기쁨이 가을 하늘만큼이나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