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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가을 일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11-12 08:01:16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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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계절은 고달프지도 곤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수 천만 년 세월을 겹겹이 소요해오며 언제나이듯 강강수월래 돌듯 여전한 평심을 유지하고 있다, 오로지 우리 인생들만 목숨줄 가누느라 허둥허둥 고통스러워하다 시들어가고 병들어간다. 

인생 한계성을 집약해보라며 호통치듯 태연하게 가을 치장을 두르고는 가을을 누려보라고 즐겨보라고 부추기고 있다. 가까운 지인은 단풍 여행으로 캐나다로 떠났다. 지난 해 이맘 때쯤 팬데믹과 맞짱뜨면서도 그레이트 스모키 국립공원을 찾았지만 전념해야할 일도 없었는데 가을을 늦으막하게 감지한 탓에 도심 단풍맞이로 족하기로 했다.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어디로든 떠나지 못한 가을이라면 따가운 볕살이라도 절친 대하듯 붙들고 있어야 할 참이다. 가을 볕살에 쪼그리고 앉아 삶은 그렇듯 흘러가는 것이라고 가을의 조락과 비움을 훑어보기도 하고 볕살이 따가우면 그늘로 자리를 옮겨가며 가을의 성숙과 결실을 읽어낼 수 밖에. 

탄력잃은 손등 피부를 꼬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기도 하고, 잊혀져가는 것들과 사라져 가는 것들이 알싸하게 콧등을 아리게하고, 아름다운 것과 여물어가는 것들이 마치 요긴한 회담이라도 하듯 분주해지는 소란을 가을날 기쁨으로 지켜볼 밖에.

볕살 좋은 날이 많아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여한없이 바라볼 수 있는 계절이다. 여분의 시간일랑은 나를 위해 써보는 연습을 제대로 해보자는 다짐도 하고, 새털구름같은 사념을 채우고 덜어내기도 하면서 부디 아프지 말자고 다짐도 해본다. 돌아보면 눈시울 뜨거워질 일들만 아지랑이로 피어오르고, 젊은날 푸르름이 생생할 만큼 곁에서 부시럭거리기도 한다. 갑자기 쓰러지는 고목처럼 서둘러 떠나버린 지인 빈자리가 가슴을 시리게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는 가을 위로를 붙들게 된다. 가을이라서 다행이다 싶다.

팬데믹 여파로 삭막해진 도심을 가을이 곱게 물들이고 있다. 근교 산자락마다 무엇으로도 덧칠할 수 없는 수려함으로 정교한 변신이 시도되고 있다. 계절의 흐름에 인생의 흐름을 유추해내며 계절들이 가진 특유의 그리움을 덧입혀보고 싶은 심정이지만 나이만큼의 가을을 만나왔던가 민낯의 부끄러움을 시인할 수 밖에. 

숭숭 뚫린 해양지각 현무암처럼 살아온 흔적들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숙고하기를 요구받는 것 같아 가을 성숙을 정중하게 되새김 하려한다. 생의 여울목마저도 가을이었으면 좋으련만 가을도 아닌 늦가을도 아닌 침잠의 겨울로 접어든 시점이라는 느낌에 숙연해진다. 계절의 옷깃이 바뀔 무렵이면 의례히 찾아드는 무상같은 감성일랑은 접어둘 수 있지만 이 가을이 가면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드는 것이라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진리 앞에 노심은 처연해진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연륜이 익어가는 만큼의 소중한 것이 무언지 가려 분별할 줄 알아서 부디 이 가을에는 남은 날들을 아끼며 본향을 향한 그리움들을 절절한 묵상으로 쏟아내리라.

가을에게 엄지척을 해주고 싶은 것은 완전연소를 통한 온전한 비움을 거리낌없이 해마다 감행한다는 것이다. 굴참나무가 참숯이 되기까지 그을림 없는 완전연소가 필수이듯 가을이 다가서고 무르익고 떠나가는 모든 순환의 소리없는 과정들이 본분에 충실하려는 완전연소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또한 그을림 연기만 가득 남기는 인생이 되지 말자는 따끔한 일침을 농익어가는 가을로부터 받게된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네에게 유독 고향 산하를 떠올리게 하는 한적함과 결실의 귀착과 풍요한 고요로 이끌어주는 가을이라서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가랑잎으로 쌓이기 시작하면 가을 아름다움은 정점에 이른다. 하늘도 산들도 사람들도 만상이 아름답다. 가을을 아름답게 느끼고 바라보는 마음까지도 아름답다. 가을이 부려놓은 아름다움은 황홀한 신비가 되어 가난한 마음들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넘쳐나는 신의 은총이었다.

가을은 기도의 깊이를 더 깊음으로 이끌어주고 내려놓음과 비움의 여백으로하여 영혼의 성화까지 심도있게 이루어지도록 이끌어준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가을 특유의 허전한 고독이 저며들지만 풍요의 완성이 눈 앞이라 인생이 왜소하게 비춰지기 때문이라며 포르르 내려앉는 가랑잎이 현답을 건네준다. 

성숙을 도모하는 계절이라서 삭막한 겨울맞이 채비를 알뜰하게 챙겨주는 미담도 깃들어 있다. 가을은 버릴게 없다. 풍경의 아름다움도 내음의 겸허함도 가랑잎이 내려앉는 경쾌한 리듬마저도. 빈 그릇으로 비워내고 내려놓아야 함을 일깨워 주는 가을이라서 가을처럼 살고 싶은, 가을을 닮고 싶은 마음 길이 열리고 있다. 가을 읽기로 담숙해진 나이든 아낙까지도 황홀한 빛결로 물들어가는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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